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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송 Nov 07.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댁에 갑니다.

며느리의 일기는 계속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댁에 계속 간다.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나는 시댁에 계속 가고 있다. 

가끔 시댁 이야기를 하며 내가 겪은 일을 조금만 내비쳐도 나의 친구들은 기겁을 했다. 그러면서 결혼을 안 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야, 그냥 이혼해. 왜 그러고 사니.

시어머니가 던진 숱한 말들에도 나는 이혼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딱 한 번,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를 건드렸을 때 잠시 이혼해야 하나 고민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확 김에 떠올린 생각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시어머니의 경우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들이 날 아프게 했었다. 의도적으로 나를 몰아세우거나 크게 못살게 군 적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마 내가 아직 남편을 엄청 사랑하나 보다. 사실 남편은 내가 시댁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어머니께 들은 말로 언짢아할 때면 “내가 미안해. 우리 엄마가 잘못했어. 내가 진짜 미안해.”하고 바로 저자세로 나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을 우선시한다. 나의 남편은 전형적인 착한 아들, 즉 효자로 시댁에서 마누라를 위해 큰소리치는 건 꿈도 못 꾼다. 시어머니와 나의 갈등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남편의 좋은 점은 해결은 못해도 해소는 해준다는 것이다. 내가 속상한 마음을 토로할 때면 온전한 내편이 되어주고 나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후폭풍을 기꺼이 감당해준다. 남편도 처음엔 아들과 남편의 역할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래도 유부남의 레벨이 상승하며 어떻게 대처하면 될지 처세가 늘었다. 


며느리가 되어보니 며느리가 된 사람들과 며느리가 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우선 며느리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아 주는 시댁을 만났다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부럽다. 행복한 시댁생활을 영원히 누리길 두 손 모아 바라고 응원한다. 나랑 비슷한 경험을 한 며느리라면 같이 부둥켜안고 웃고 울고 쏟아내며 이전의 기억을 리셋했으면 한다. 그래야 또 좋은 마음을 지니고 가볍게 시댁으로 향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혹시 예비 신부 중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댁을 만날 것 같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길 바란다. 내 동생이라면 당장 뜯어말리고 싶지만 나도 결혼을 강행한 입장이라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마지막 가장 바라는 것은 결혼을 앞둔 예비 며느리들은 상처 없이 사랑만 받길 바란다. 요즘 시어머니들도 주변에서 하도 이야기를 들어서 며느리 눈치 보며 조심하는 분들이 많다. 또한 며느리보다 더 너그럽고 인자한 마음으로 품어주는 분들도 많으리라 믿는다. 며느리의 직업, 재력, 능력 등이 며느리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으니 부디 예쁨 받으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관계가 되길 소망한다.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아이만큼 남의 자식도 얼마나 귀한 자식인지 깨닫게 되었다. 솔직히 내 아이만큼 내 아이의 배우자를 사랑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에 나는 내 아이의 배우자를 ‘자유롭게’ 해줄 자신은 있다. 관심과 사랑도 소중한 선물이지만 자유와 방임을 기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아이와 만나길 바란다. 혹시 있는 듯 없는 듯한 시댁이 더 낫다고 공감한다면 나와 사돈이 되길….


글을 쓰다 보니 글감을 만들어준 시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생각하면 다시금 열받는 기억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내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시어머니 입장도 한 번쯤 되돌아보게 되었다. 처음 나의  글을 시작할 때 다짐했듯이 내 울분과 슬픔을 이제 다 토해냈다. 그동안 흘린 눈물은 깨끗이 닦고 새 시작을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지내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긴 결혼생활이기에 나의 시댁 일지는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기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될지 모를 일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또 시댁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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