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어오며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 11월,
식집사의 가을은 반려식물들의 월동 준비로 분주해진다.
깊어가는 가을의 스산함은 한밤과 한낮의 온도차를 매일 경신하고,
동남향의 베란다에 쏟아지던 햇살도 머무름의 시간이 짧아졌다.
말을 할수 없는 식물들은 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격렬히 표현하고 있다.
반짝이던 초록잎은 붉게 물들더니 누렇게 변해가고, 잎마름과 하엽으로 가지는 앙상해진다.
기쁨 가득한 초록의 계절 내내 정성으로 돌보던 반려식물들의 안위가 염려된다.
비장한 마음으로 가위손이 되어 베란다로 나간다.
마른 잎을 제거하고 병들거나 죽은 가지를 가지치기 한다.
멀리 따뜻한 땅에서 건너온 아이들은 실내로 귀하게 모시고,
우리땅에서 계절을 버텨온 아이들은 조각의 볕이라도 머무는 자리를 찾아 유랑한다.
빛은 최대한, 물은 적게, 온도는 일정하게, 통풍은 꾸준히, 관찰은 자주하되 손 대는건 최소한.
식집사가 해야할 일의 목록이 짧아졌다.
반려식물과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시기인데 마음은 자꾸만 섭섭하다.
아마도 자식을 길러낸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온 정성을 들여 키워낸 자식들이 멀어질 때, 혹은 떠날 때.
그럼에도 관찰은 자주하되 손대는건 최소한.
길러낸 자의 마음으로 다시 올 희망의 계절을 기다린다.
쇠락의 계절을 지나 혹한의 추위를 넘어 초록의 새싹을 세상으로 밀어내는,
기적의 봄에 다시 만나자.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코스모스가 홀홀이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 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