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던 하루

일상의 사색

by 윤호

한주의 끝이자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는 일요일은

되도록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베란다 식물들을 살피며 아직 몽롱한 잠의 기운을 떨친다.

오늘도 살아있는 식물들이 나는 참 고맙다.


다음은 재료의 준비부터 상차림까지 나의 손품이 들어간 식사를 한다.

밥과 반찬 두세 개, 이거면 충분하다.


환기를 위해 베란다 창을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

노동요는 재즈로 선곡해 볼까.


오후엔 영화관으로 향했다.

젊은 시절 섹시의 아이콘이었던 톰 오빠는,

30년이 지났지만 이 세상 아저씨 중 제일 섹시하다.


햇살이 좋아 30분 거리의 이웃 동네로 산책을 간다.

걷는다는 것은 일상의 여행.

돌아오는 손엔 검정 봉다리가 들려있다.

이웃동네에서 소소한 쇼핑을 했다.


계획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어슬렁거린 하루가

작은 성취감으로 채워지니 생기가 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작은 집안 일들을 한다.

수건을 삶아야겠다.

수건이며 속옷을 들통에 늘 삶아대던 엄마 집에서는 항상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세탁기의 ‘삶기’ 기능은 그 냄새가 나지 않는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 산 바지의 단을 줄여볼 결심을 한다.

내 바느질 솜씨는 꽤나 쓸만하다.

아, 예전처럼 바늘귀에 실이 한 번에 들어가지 않는다.


기장에 맞게 원단을 잘라내고 단을 접어 홈질을 한 후 한 땀 한 땀 공그르기한다.

완벽한 결과물에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


어느덧 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 일이 없던 하루가 온전히 채워졌다.


잠이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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