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연주곡 만들기
버킷리스트 1에서는
내가 해금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계기와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남 앞에서 연주할 피아노곡 완성하기였다.
버킷리스트 1을 올리고 며칠 뒤
다니는 성인 피아노 학원에서 가을 연주회가 열렸다.
젊은 사람들 틈에서 나이 든 아저씨 하나가 끼어 있는 풍경이
혹시나 분위기를 깰까
공연 내내 미안함과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레슨 선생님이 추천한 곡은 쇼팽의 이별의 왈츠(Op.69 No.1).
내 실력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어려운 곡으로 무대에 한 번 서야 실력이 늡니다."라는
레슨 선생님의 그 말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수락했다.
그러나 정작 무대에서는 연습할 때 한 번씩 나온 실수들이 모두 총출동했다.
손가락은 잘 안 움직이고, 다른 건반이 눌리고, 마음은 앞서가고, 박자는 점점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날 뼈저리게 실감했다.
특히 결혼한 큰아이와 사위가 참석한 자리였기에
평소보다 훨씬 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처럼 연주도 준비한 만큼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취약한 부분들이 무대 위에서는 나타난다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시작 전부터 '오늘은 왠지 망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정말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래 묵혀두었던 숙제를 드디어 끝냈다.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 한 곡을 완주하기.'
비록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결과보다 무대에 올라선 그 한 걸음이 더 중요한 법이라고 애써 달랬다.
이제 남은 목표는 하나, '언젠가 실수 없이 멋지게 연주하기.'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미 출발선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전혀 생각지 않은 해금이라는 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게 된 계기가 된 곡을
연습해서 완성하기였다.
작곡가가 설악산에서 밤을 새우며 새벽을 기다리다가
일출을 마주하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국악그룹인 슬기둥의 리더이자 태평소 연주자였던 이준호 작곡가의 곡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아직은 서툴고 좋은 곡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연습 끝에 곡 전체를 연주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이 곡을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언젠가 실력이 더 무르익었을 때,
다시 한번 제대로 녹음하고 싶은 곡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해금연주-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남앞에서 피아노 연주하기, 그리고 목표로 했던 해금 곡 완성하기
두 개의 버킷리스트를 지웠다,
어느덧 내가 버킷리스트를 지워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좀 슬프기도 하고 그것에 적응하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악기도 노력한 시간만큼의 소리를 정직하게 들려준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악기를 배우고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