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by 짧아진 텔로미어

환상통


다녀온다는 말 없이 새들이 떠났다.

깃털에 남은 향은 거슬러 가야 할 바람의 경로.

바람이 낮아지면 기억이 따라올까 봐 고도를 높여 날았다.

새들은 떠날 때,

바람조차 건들지 못한 깃털 하나쯤 남긴다.

주소를 떼어낸 둥지 속에 깃털을 흔드는 기억이 남았다.

아이를 안던 기억에 눌린 왼팔.

흐릿하게 잔상만 남은 왼팔의 공백이 저리다.

비울수록 무거워지는 모순.

절단된 기억의 골조에 남은 환상통.

사람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방식으로 작아진다.

그리움은 품었던 방향으로 기운다.

오른팔에 가방을 들어야 비로소 균형이 맞는 이유.

멀어지는 만큼 깊어지는 거라면, 공허도 사랑의 또 다른 발음.

인사도 없이 성인이 된 아이 방. 유년이 기대던 창틀은 보이지 않고

창밖의 나무는 문 너머에서 계절을 센다.

한 사람 몫의 말수만큼 허공이 비면 무게중심이 바뀌고 고요가 더 뚜렷해진다.

이소(離巢)란, 참 조용한 말.

소리를 내지 않아도 집이 서서히 작아진다.

문이 먼저 나가고 손잡이를 감싸던 습관이 빠져나갔다.

거처를 바꾸는 건 주소가 아니라 체온의 위치다.

그리움에는 온도가 없다.

남은 사람을 가늠하는 감각만 있을 뿐.

저린 왼팔에, 오래전 자장가 하나가 상통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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