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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간의 위로와 격려는 허무를 남기고....

(셀프 글쓰기 챌린지 27) 거울 같은 친구가 왔었다

by 글구름



최근 몇 년간 심리 불안과 우울증을 겪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수시로 전화 통화나 만남을 가지며 정성을 다해 힘든 사정 얘기를 들어줬다.

허우적 대고 있는 불행의 늪에서 어떻게든 헤쳐 나오길 바라며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힘이 되도록 노력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예전에 비해서 아주 안정되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차 오른 상태였다.

늘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친구였는데 긍정적으로 변화된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한참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좀 황당하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몇 년 동안 내가 그 친구에게 힘이 되기 위해 했던 행동을 그 친구는 본인의 또 다른 친구에게 나와 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 친구는 내가 본인에게 그동안 어떻게 해주고 있었는지는 그다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그동안 본인이 다른 이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상대는 늘 그대로여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던 자신만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그래서 이젠 그렇게 안 살아가겠노라 얘기하고 있었다.


엥? 이 상황이 뭐지?

나 지금 거울을 보고 있나?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야말로 친구를 향했던 그동안의 정성이 깡그리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기운이 쑥 빠졌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제야 괜찮아 보이는 친구에게 '내가 너에게 했던 것들 아니냐'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내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게 우스운 대화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본인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다른 이가 주변에 있었던 것 같다.

상대를 위로하면서 본인의 삶이 그나마 낫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 때로 안심하며 살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의 흐름에 순간 겁이 났다.

혹시 나도 그랬던 건 아닌가 하고....

친구의 괴로운 사정을 위로했다고 하면서 어쩌면 나의 삶이 더 낫다고 여기며 내 삶에 안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긴 거면 스스로에게 실망이 너무나 클 것 같았다.


그날 그 친구는 나의 또 다른 자아로서 찾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아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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