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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은 어린 날 그리움의 향기

(셀프 글쓰기 챌린지 28) 각인된 장면과 향기의 기억

by 글구름


4월 둘째 주 아침, 운동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매년 찾아오는 그리움의 향기가 느껴졌다.




라일락 네가 돌아왔구나!


어린 시절 각인된 장면과 향기의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니고 있다.



[ 작은 꼬마가 현관문열고 나온다.

좌측으로 화단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작은 마당이 보인다.

마당을 끼고 우측으로 돌면 위로 오를 수 있는 곳곳에 녹이 벗겨진 진한 청록색 철계단이 보인다.

국민학생 저학년 꼬마는 경사가 높아서 꽤나 조심해서 한 계단 씩 올라간다.


녹색 철계단 중간쯤 올라가다가 우측을 바라보면 큰 창문이 보이는데 커튼이 열려 있으면 우리 집 안방 안이 다 보인다. 창문까지 열려 있으면 안에서 말도 건넨다.

"뭐 하러 올라가?"하고.


한 번은 안방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계단을 오르고 있는 길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대단한 기억도 아니고 아주 짧은 순간인데도 그 기억이 신기하게도 생생하다.


철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옥상에 도착한다.

꼬마는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꽤 기다란 빨랫줄이 있는데 엄마가 이불을 널어 두면 반으로 접힌 이불 사이에 들어가서 얼굴을 비비면서 왔다 갔다 한다.


아래쪽 화단에 심어진 나무는 키가 커서 옥상까지 올라왔는데 그 나무가 라일락 나무였다.

4월 이 맘 때가 되면 라일락 향기가 진하게 퍼진다.


꼬마는 연보라색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옥상에 자꾸만 올라간다. 아래에서는 꽃을 보기가 어렵다.

옥상으로 가면 풍성한 라일락 꽃뭉치에 얼굴을 파묻고 향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꼬마에게 아래의 화단은 거대한 화병이었다.]


매년 라일락 향기가 나면,

LED조명을 사방에서 비추는 것만큼 환한 봄날에 연보라색 꽃뭉치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꼬마시절의 내가 보인다.


라일락은 어린 날 혼자만 누렸던 향기로운 봄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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