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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4. 2023

드립백을 못 산 덕에

"넵!" 커피드립백을 사 두라니 아들이 흔쾌히 답한다. 추석연휴 사흘간 아들 집에서 내가 마실 커피다. 백일 된 손자 덕으로 역귀성하는데 아들이 찌뿌둥할 이유는 없지.

드립백 못 샀슴다! 안 산 듯한 표정이 당당하다. 나도 덤덤하다. 드립백보다 비싸게 마시지만 아들이 지출하니까. 카페 순례도 재미있으니까. 아직 어둔한 맏손자가 앞장선다. 킥보드를 밀며 카페까지 달린다. 추석 아침, 도곡동 큰길은 한산한데 작은 카페는 커피향이 이미 짙다. 카페 정원에 머리카락 희끗한 분이 혼자 커피를 마신다. '~커피 한 잔 마시자며 현관문을 열기 전에 거울 쳐다보고, 카페문을 열고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자리잡고~' 아마도.

멀지 않은 내 일상을 그려본다. 어느 날 여과지를 사러가기 귀찮거나, 오래 된 그라인드가 말을 안 듣거나,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고 느끼면 카페로 가리.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보고, 적당히 걸으며 옆구리살도 느끼고, 카페 문을 열며 커피향부터 즐기리. 아들이 드립백을 못 산 덕에 미래의 일상을 그려본다. 괜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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