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는 계속 걸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혼자 걸었다. 이웃 사람들과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가 마을 사람에게 뱉은 말은 단 한 마디, "나를 좀 그냥 두시오!" 밀폐공포증이 있어 계속 걷는다, 심한 경련이 있어 마을 사람들과 말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매일 걷다가 어느 날 좀머 씨는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혼자만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 고통에 머무른 삶,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 없는 삶이었다.
2011년 「좀머 씨 이야기」를 처음 읽으며 좀머 씨 때문에 마음 아팠다. 10년 지나 다시 읽으니 화자인 소년에게 마음이 간다. 소년은 좀머 씨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우연히 본다. 나무 위에서 놀던 소년이 좀머 씨가 물속에 가라앉는 장면을 본다. 소리 지를 틈도 없이 목격한 좀머 씨의 최후 모습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2주가 지나서 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마을사람들이 안다. 구구한 억측들이 난무하는데 소년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좀머 씨는 호수에 걸어 들어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소년은 끝까지 침묵한다. 죽음을 목격한 충격 때문일까, 보고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젊은 나는 말수가 적으나 폭발적이었다. 참다가 터트리는 성격이어서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말로 상처 주고도 몰랐다. 나에게 혁명은 상담심리였다. 내 성격을 알게 되고 기저 감정을 찾았다. 내 속의 '어른 아이'가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모습도 보았다. '어른 같은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아이 같은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나를 모르고 남도 모르고 나와 이웃의 관계도 모르며 살고 있었다.
들길을 걸으면 가끔 좀머 씨가 생각난다. "나를 좀 그냥 두시오!" 폭우 속에서 걷다가 차를 태워주겠다는 사람에게 버럭 소리치는 좀머 씨에게서 나를 본다. 좀머 씨의 자살 장면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 소년의 고통이 느껴진다. 좀머 씨의 아픔, 소년의 아픔은 실체를 모르지만 느낀다. 드러내지 못하는 아픔들을 안고 사는 사람, 위로받지 못하는 삶들에게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