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납매를 보려고 식물원을 네 번째 찾아간다. 2월 17일, 정월 보름 전이다. '좋은 곡식을 가려 담는 키(箕)'를 닮은 기청산식물원에 납매가 드디어 활짝 피었구나.식물원 원장님이 정자 뒤로 가보라 하신다. 식물원의 홍보 사진처럼 풍성한 납매화를 꽃내음과 함께 친견하려니 가슴이 설렌다.
2월 들자 화엄사 홍매화와 통도사 지장매화 사진들이 마구마구 올라온다. 홍매가 화려한 색으로 눈길발길을 끈다면 선암사 600년 된 선암매는 향으로 사람을 당긴다. 향이라면 나에게는 청매가 으뜸이다. 청매는 꽃받침이 파랗고 꽃잎은 하얗다.
청매화가 머물던 거실과 향은 생생한데 청매화 가지를 한 아름 안겨준 친구와는 소원하다. 흥분하면 말이 많고 빨라지는 친구는 고작 40년 지기이니 600년 선암매의 기품을 기대하지는 않아야지. 우리는 도찐개찐 필부들이니까.
납매군락지에 다가가도 향이 맡아지지 않는다. 꽃에 코를 갖다 대니 겨우 은은하다. 꽃송이는 듬성하고 노란색은 희미하다. 만개하여 풍성한 홍보 사진과 다르고 식물원 전체에 퍼진다는 향도 원장님 말씀과 다르다. 납매꽃을 맛있게 먹는다는 직박구리도 들리지 않는다.
둘레둘레 걸어 나오다가 솜털 같은 목련 봉오리, 땅을 뚫고 올라오는 수선화 싹을 본다. 키 큰 나무들은 아직 맨살이고 납매가 목련이나 수선화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신록이 색칠하기 전에 노란빛을 살짝 내고 향기도 수줍게 뿜는다. 납매는 속 깊은 여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