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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1. 2023

느릿느릿 생각해 보니

오늘은 터벅터벅 걷는다. 별것 아닌 것들을 눈여겨보며 8km를 걷는다. 강구 성당에서 정지골 쪽으로 고개를 넘자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가 보인다. 느릿느릿 걷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86세면 울 엄마보다는 새댁입니더." 할머니가 새댁처럼 웃으신다.

쌀 닷 되 싣고 가서 떡방앗간에 맡기고 돌아오시는 길이다. '떡 찾으러는 못 가지." 푸근해서 운동삼아 나왔다는  할머니에게 묻지도 않는 내 이야기를 푼다. '어머니가 미수米壽이다, 재작년부터 혈압약, 고지혈증 약, 골다공증 약, 우울증 약을 먹는다...' "나는 10년 전부터 먹는데."

갈림길이다. 할머니는 남정교회 쪽이고 나는 탑골 쪽이다. 할머니를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할머니를 만난 길은 기억하겠지. 남정천을 따라가다가 그물을 깁는 어부들을 본다. 베트남에서 온 어부들이 '정치망, 구계 살아요'를 정확하게 발음한다. 그들이 일하는 장면도 잊히지 않으리.

어머니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자꾸  차려준다. 종이 박스에 헌 옷을 깔아 준다. 현관 앞에 자리 잡은 고양이들과 눈 맞추고 새끼 낳은 어미와 사설한다. 길고양이 개체수가 급증해서 문제라는 말은 어머니에게 쇠 귀에 경 읽기이다. 어머니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에게 눈길을 주게 된다.

사람이 고양이보다 우월한가? 느릿느릿 걷는 할머니보다 내가 더 현명한가? 나는 어머니에게 잔소리해도 되는가? 터벅터벅 걸으며 느릿느릿 생각한다. 세상은 나 중심으로 돌지 않고 각자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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