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리 풍어제에 영덕별신굿을 놀다
등가방 메고 집을 나선다. 올봄은 황사와 꽃가루로 범벅이 되거나 비바람이 거센 날이 반복되더니 오늘은 오랜만에 걷기 좋은 날씨이다. 오포 해수욕장에서 삼사해상공원 카페까지 걷는다. 해파랑 19코스 블루로드 D구간이다. 삼사풍어제가 4월 산불 때문에 연기되었다가 플래카드가 다시 걸린다. 5/9 ~10일, 삼사리 방파제. 시간이 안 적혀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가본다.
12시에 삼사 방파제에 이르니 행사 천막이 보이고 만국기도 휘날린다. 여자 남자 무속인들은 천막 밖에서 왔다 갔다 움직인다. 너무 조용해서 굿판 옆 천막을 기웃거린다.
"풍어제 끝났어요?" "점심 먹고 또 해요."
무인들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낯선 나에게도 국밥을 준다. 떡도 있고 과일도 여러 가지이다. 무인들에게 '미주구리회 많이 잡수시라'더니 내 상에는 미주구리회를 안 주네. 그래도 찐 가자미와 문어숙회는 있어 잔칫밥을 눈치껏 먹는다.
굿판이 차려진 천막으로 들어가니 동네 사람들이 벌써 자리 잡고 있다. 빈 의자에 앉으려니 맡아 놓은 자리란다. 두 번 쫓겨나서 맨 앞 빈자리에 앉는다. 1등석이다. 동영상을 찍는 기사가 영덕별신굿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3호라고 말한다. 딸, 손녀, 시동생과 여남은 명의 후진들과 풍물패가 빙 둘러앉아 보좌하는 가운데 굿판이 시작된다.
심청굿이란다. 심청전, 심청가에 심청굿이라니, 솔깃하다. 몸피가 좋은 큰 무당이 두 시간을 주도하는데 소설이나 판소리와 달리 청이 어머니 비중이 높다. 청이가 밥 동냥 가는 장면에서 무당이 운다. 나도 마을 사람들도 눈물을 흘린다. 청이 엄마 장례와 청이가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에 큰 무당이 "돈 좀 도고."하니 어린 무녀들이 제수비 얻으러 관객석에 들어온다. 비상금으로 들고 온 5만 원을 꽂아 준다. 맨 앞에 앉아 10년 만의 굿판을 거저 볼 수는 없다. 심청굿은 지금까지 모르다가 처음 보는 문화재라서 제수비 5만 원이 아깝지 않다.
한양으로 맹인잔치 가다가 뺑덕어미가 한 봉사랑 줄행랑하자 열받은 심봉사가 홀랑 벗고 개울에서 목욕한다. 열 식힌 심봉사가 밤인 줄 알고 벗은 채로 벗어둔 옷 찾으러 다니자 아이들이 '봉사 ×× 봐라'며 놀린다. 왕비 청이가 벌인 맹인 잔치 마지막 날 심 봉사 각시부인인 옥수부인이 하늘에서 약수를 뿌려 모든 맹인들이 눈을 번쩍 뜨는데 심 봉사만 눈이 떠지질 않는다. 뺑덕어미와 놀아났기 때문이란다. 울렸다가 웃겼다가 큰 무당님 능력자이시네.
눈 못 뜬 심 봉사가 봉사점을 본다.
"다음 풍어제가 10년 뒤는 너무 멀다. 5년 만에 하거나 3년 만에 해라. 해마다 하는 동네도 있다."
"달나라 가는 세상이지만 용왕님께 예법은 하소. 보름 제사도 지내야지."
"제관이 풍어제 전후로 운신에 제약이 많으면 안 되제. 홀가분하게 다니소."
딸 무당과 손녀 무당이 큰 무당을 잠시 거든다. 춤짓은 다듬어지지 않고 소리는 삐걱거린다. 도반 무녀들이 슬쩍 웃지만 아기 무녀는 끝까지 진지하다. 가외로 제수비를 거두는 수법도 재미있다. 두 시간 굿을 끝내며 큰 무당이 유행가 '막걸리 한 잔'을 불러젖힌다. 마을 잔치라 주민들도 넉넉하고 건강과 풍어를 비는 무녀도 후하다. 10년 만에 올리는 풍어제 덕으로 삼사리 주민들이 단합하고 고기도 많이 잡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