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이 나를 토닥인다

영명사 부처님도 지루해서 누우신 걸까?

by 송명옥

지루하다. 주방 창으로 보이는 새파란 바다도 덤덤하고 책상 앞에서 듣는 새소리도 익숙하다. 동해를 낀 산책길도 시큰둥하고 바닷물 속 맨발 걷기도 그저 그렇다. 귀향 3년에 매너리즘인가?


매주 두 번 평생학습원에 간다. 붓글씨를 배우고 해금을 연주한다. 고수 선배들을 만나면 새내기는 고래희라도 청년이다. 언니 오빠들에게 막내라고 이쁨 받는 재미로 출석률이 높다. 묵은이들을 따라가는 식당들도 정겹다.


'혼자 열 권을 읽기보다 열 사람이 한 권을 읽고 대화하라'라고 독서토론 예찬론자들이 말한다. 좋은 말이고 맞는 말이다. 그래도 동서고금 다양한 장르를 바꾸며 함께 읽는다. '혼자 놀기보다 함께 놀아라'로 바꾸어 본다. 이 말에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뭉쳐 다니면 감정 소모가 많다. 혼자 놀기 명수에게 함께 놀기는 어렵다. 장소나 시간대를 바꾸며 혼자 놀기가 편하다.


혼자 놀기가 다시 지루하다. 감정소모가 싫으면 이런 권태는 감당해야지. 지도를 펴고 머리로 여기저기 찾아간다. 어머니에게서 멀지 않은 동네, 고래희에게 길지 않은 길을 찾는다. 오늘은 안동이다. 동문교회에서 출발하여 낙동강변 나들이길을 따라 영락교를 건너 월영교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차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계획이다.


호반나들이길 8km를 두 시간 걷는다. '바스락' 낙엽으면 냄새가 은근히 구수하다. 드디어 줄 서서 먹는다는 아이스크림집으로 간다. 이제 막 해가 넘어갔는데 '아차가'는 어둡다. "재료가 소진되어 일찍 문 닫습니다." 월요일 쉬는 집이라 일요일에 온 날, 헛웃음이 난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마침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시작된다. 역시 양반 도시는 손님을 섭섭하게 보내지 않네.



자연을 벗 삼아 조용히 걷는 날이 쌓이면 역마살이 들썩인다. 익명의 사람들이 북적대는 낯선 공간이 가끔 그립다. 부처님은 한낮에 옥상에 드러눕기만 해도 위로되시겠지만 대중에게는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오늘 나를 들뜨게 하는 낯선 공간을 찾아 기분을 바꾼다. 당분간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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