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아닙니다, 본능입니다

게으른 뚜벅이가 생각해 보니

by 송명옥

나라 전체가 시뻘겋다. 창 밖으로 보이는 먼산이 희미하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가득하다. 한낮에 잠시 환기했는데 거실 공기청정기가 붉으락푸르락한다. 외출하지 말아야 할 날씨이다. 바닷바람이 거세니 해안도로는 먼지가 덜하겠지.


해지기 전에 꽁꽁 싸매고 집을 나선다. 먼바다 위 하늘은 맑은데 바닷가 마을은 부옇다. 이미 나선 길이라 걷는다. 자주 걷던 이 길은 방향을 바꾸고 시간대를 달리해도 밋밋하다. 새로운 동네, 낯선 길을 찾는 심보가 오랜만에 익숙한 길을 밟는다.


이런 날씨에도 뚜벅이들은 나온다. 전투하듯 걷는 사람, 느긋하게 걷는 사람 들을 스친다. 바닷가 절벽에 매달려 살아남은 소나무들을 살핀다. 솔방울이 많이 달린 소나무, 수꽃이 쑤욱 올라온 소나무 들 사이로 눈물 흘리는 소나무가 보인다. 꺾인 소나무 줄기에 송진이 흐른다.


센 바람이 꺾었나, 무심한 마음이 꺾었나. 길 쪽으로 뻗은 네 탓이냐, 생각 없는 손길 탓이냐. 소나무에게는 물을 일도 따질 일도 아닌데 시시한 할멈이 묻고 따진다. 나무를 꺾는 무심이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본능이 있고. 상처 입은 소나무는 그냥 스스로 치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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