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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1. 2023

불편한 배설에도 가을볕 가득한 날

U가 점심값을 계산한다. "카페는 회비로 계산할게." "아니다. 내가 풀코스로 쏠게." 디저트도 U가 산다. 그녀는 카페서도 계속 배설할 모양이다. 부산 ㄴ여중 1학년 10반 급우 여섯이 만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봄가을에 만난 세월이 35년이다. 혼주가 되는 모습을 함께 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머니가 된 친구들이다.

U의 딸아들은 판사, 공인회계사가 되고 사위, 며느리는 교수, 박사이다. U는 은근히 우리를 뿜뿜하게 한다.  DNA가 대단하다는 U의 손자손녀도 일 년에 두 번은 우리 팀이다. 재력이 대단한  남편도 늘 친구의 메뉴이다. 아들이 돌싱이 되어 손자손녀를 그녀에게 맡긴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래도 우리는 지루해하지 않고 맞장구치며 응원한다.

올 가을에는 경주에서 만났다. 경상북도 산림연구원 은행길을 걷고 '여기당' 시래기밥을 먹었다. 카페 '서오'에서 U의 말이 이어지길래 남산동 마을길로 끌고 나왔다. 평일의 古都는 골목골목 가을볕이 가득한데 U의 배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날 배설총량의 90%는 U의 것이었다. 밥값 내놓고 풍풍 배설하냐? 밥값 안 내고 말수 줄이면 더 좋은데. 1년에 두 번이니까 계속 견뎌 주랴? 내년 봄까지 무심히 살자. 그런데 공짜밥을 먹고 귀를 열어준 날, 나는 자정까지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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