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에 사람이 많다. 가을빛이 고와서 참지 못한 눈길들인가? 가을 소리에 유혹당한 발길들인가? 청춘도 무리 지어 나오고 실버도 삼삼오오 걷는다. 가을에는 산길도 더 사랑받는다.
11:00. 오늘도 등산길 대신 둘레길로 든다. 몇 년 전 모과를 산 빨간 대문 집을 지나서 사령고개를 구불구불 넘는다. 고은사 1km 표지가 서 있는 갈림길에서 안 가 본 길로 든다. 차바퀴 흔적이 뚜렷한 흙길이다. 11:40 방화소류지에서 멈춘다. 작은 저수지라는 소류지에서 산 아래 송라 대전리 농업용수를 모으나 보다. 저수량이 적은데 물새가 논다. 물닭 가족일까? 20분 더 걸어 화진해수욕장까지 가고 싶지만 원점회귀한다. 갈 때 스친 오래된 은행나무를 올 때 올려 본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툭툭 떨어지는 날 다시 와야지. 할아버지 나무에 등 대고 앉아 낙엽을 들으리.
보경사 울타리는 탱자나무, 탱자가시 사이로 '묵언'이 보인다. 입 다물고 쪼그리고 앉아 스님 그림자를 기다리다가 수로에 떠있는 탱자열매를 본다. 길가에 떨어진 탱자를 만지니 향이 코를 찌른다. 눈이 스르르 감긴다. 가시가 지킨 것은 스님인가 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