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 탄 숲에도 비는 내리고

코가 땅에 닿도록 길어진 피노키오는

by 송명옥

7번 국도에서 돌을 맞았다. 옆에 가던 차가 차선을 바꾸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내 차 앞유리로 돌이 튕긴 듯했다. 멀쩡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30분 정도 지나자 가로로 금이 생겼다. 점점 번져 45cm나 된다. 운전보조석에 콕 찍힌 돌자국은 땜질했는데 이번에는 돈 좀 나가게 생겼다.


09:30, 자동차 유리 수리를 맡긴다. 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한 끝에 철길숲으로 간다. 비가 잠시 쉬는 아침이라 자전거도 듬성듬성하고 신발은 많다. 수국 전시장에서 셀카 하는데 지나가던 여인이 카메라를 달랜다. 알록달록한 수국정원을 지나니 불의 정원이다. 2017년 3월 8일 가스가 분출하여 2024년 9월 27일에 자연소멸하고 사화산처럼 누워 있다. 코가 땅에 닿은 피노키오는 아직도 당황한 표정이다. 비가 비껴가는 도시는 평화롭다.


100년 만의 폭우라고 한다. 극한 비가 7월 17일 서산에 내렸다. 시간당 114.9mm, 10시간 동안 438.5mm! 게릴라성 집중호우, 괴물비, 물벼락, 장대비라고 불렸다. 기후 변화로 생긴 게릴라는 무자비했다. 사람이 죽고 집과 차가 떠내려가고 도로가 내려앉고 산이 무너지고 가축이 집단폐사했다. 인간이 만든 게릴라가 인간을 강타했다.


서산 광주가 물난리를 겪는데 동해안은 다소 잠잠하다. 바람에 실린 비가 잠깐씩 난리 쳤지만 상대적으로 얌전히 내린다. 오십천을 거슬러 가본다. 지난봄 의성에서 날아온 불도깨비들이 휩쓴 자리마다 시커먼 상처가 처연하다. 숲에 내리는 비가 불타 죽은 나무에도 골고루 닿는다. 도깨비불이 난리 칠 때 조용하던 저 마을에 오늘 괴물비가 살벌하다. 한쪽에서 물난리를 당하고 어제 불도깨비 지나간 자리는 숨죽이고.


게릴라성 폭우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괴물비이다. 살벌하게 퍼붓는 괴물비는 자비심이 없네, 자비심이 없는 인간도 있지. 모진 인간도 있고. 괴물비는 인간의 예측을 비웃는다, 야비한 인간처럼. 합리적인 예측을 비껴가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다. 거짓말이 아니니까 코가 길어질 일은 없겠지만 피노키오 코처럼 점점 길어져서 괴물이 제풀에 부러질 날이 올까?


keyword
이전 07화자전거 타는 꽃길이 있다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