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평전을 학교 도서관 책꽂이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순간 망설였다. 벤야민-수많은 평론서와 사회과학서적에서, 문예지에서 보아 왔던 이름 또는 짤막하고 정교한 인용문들의 장인-과 관련된 서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 왔지만, 막상 눈 앞의 벤야민을 보니 두 가지 문제가 서로 부딪혔다: 평전을 먼저 보고 벤야민의 저서를 추후에 보는 일; 그의 저서를 먼저 보고 평전을 추후에 보는 일. 어느 것이 옳은 지는 지금도 모른다. 평전을 먼저 보자니 아직 벤야민을 접하지 않은 카스테라 같은 내 지성이 아카데미즘의 바람을 맞아 딱딱하게 도식화되는 게 아닐지, 저서를 먼저 보자니 양의 방대함에 눌려 압사당하는 게 아닐지(그때만 해도 벤야민의 저서로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책으로 가던 손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앞에 적은 조피 숄의 경우와 확연히 달랐다. 그녀가 벤야민처럼 문필가로서 작품을 하나라도 남겼으면 나는 그녀의 평전 앞에서도 망설였을 것이다. 그녀에게 조그만 감사를 보낸다.
저자 풀트는 이런 고민을 미리, 거의 40년 전에, 예측했다는 듯이 벤야민에 대한 객관적 고증에 많은 애를 썼다. 그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벤야민의 대언자를 자처하는 숄렘과 아도르노가 얼마나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한 작가를 난도질했는지, 맑시스트를 자청했던 벤야민의 사상적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그의 여성관계는 어떠했는지, 이러한 내용들은 실로 이제껏 들어왔던 발터 벤야민이라는 그 추상성, 파편화된 지식에 많은 살을 붙여 주었다. 벤야민의 일생을 유년기부터 객관적으로 조망하면서도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비롯한 저서들을 그 창작시기와 맞물려 개관하게 되는 계기가 예술사가 풀트에 의해 만들어지게 됐다.
발터 벤야민(1892~1940)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오랜 망명생활을 하다 스페인 국경의 한 호텔에서 경찰에 발각되어 자살한다.
벤야민에 대한 평가를 평전만 보고 내리기엔 무리가 따른다. 어디까지나 평전은 누군가의 시각을 통해 한 차례 걸러 나온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삶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저작과 분리하여 생각해야 하는 지도 하나의 문제점이다. <보들레르에 나타난 제2 제정기의 파리>를 놓고 보더라도, 이 작품을 통한 벤야민의 근대 도시에 대한 분석 의지가 결코 시인 보들레르를 추앙하는 기호에 선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할까. 저자의 말대로 근대 도시를 분석하려면 차라리 런던을 주제로 삼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엔 근대도시가 살아나는 대신 벤야민 본인의 숨결은 오히려 사그라드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정치적으로 문예사조에 편입시킬 수 있는 역량, 문학적 시각으로 근대도시를 '묘사'할 수 있는 역량은, 단순한 분석가가 아니라 작가로서 그가 가진 창조성에서 나왔다. 애석한 일이다. 그의 평론은 너무 창조적이었다.
그 창조성은 아마 모든 '간극'에서 나왔을 것이다. 유복했던 유년시절과 대공황기 사이의 간극, 쁘띠-부르주아라는 간극, 유대인과 독일인 사이의 간극, 간극에 선 사람은 다리를 한쪽씩 걸친 두 지면을 모두 살필 수밖에 없다. 거기엔 유동성이 있어 때때로 한 면이 다른 면보다 높이 들린다. 이윽고 둘 사이에 낙차가 생긴다. 이 낙차에서 벤야민은 어느 것도 객관적으로 분석될 수 없고, 또 어느 것도 현실적인 것 없이 창조될 수 없다는 비극-근원을 감지했다. 그리고 이를 창조력의 원천으로 삼은 것이다. 벤야민에 대해 이런 평가를 조심스레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