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으로 온 그녀의 이야기
사람들의 움직임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작은 동물들의 발소리, 바닷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곳.
시골 마을 안의 또 다른 마을처럼 아늑한 책방에 그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에게 위로가 될 책을 찾고 싶다고 했다.
책을 고르는 동안, 나는 그녀를 위해 따뜻한 커피를 내렸다.
커피 향이 퍼지자 어색함이 조금은 풀린 듯,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키, 미성의 목소리, 동그란 안경. 그녀와 반대되는 인상이었던 덩치 큰 남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처음 만났고, 연애 생각이 없던 그녀는 그 만남을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그는 다르게 다가왔다. 적극적으로, 진심으로.
그녀는 어느새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졌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살던 그녀는,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고, 뜻밖의 임신으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달랐다. 함께 살수록, 그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집안일은 늘 그녀의 몫이었고, 부부 동반 모임에도 혼자 참석해야 했다.
남편은 밖에선 마치 미혼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대화도 해보고, 설득도 해보고, 화도 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상처만 남는 대답뿐이었다.
그 스트레스는 결국, 뱃속 아이를 잃게 만들었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던 며칠을 지나고, 세상과의 연결을 끊은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남편 덕분에 알게 된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부부관계를 조금씩 회복했고, 첫째, 둘째, 셋째 아이를 차례로 맞이했다.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집은 좁아졌고, 생활비는 늘 부족했다. 맞벌이로도 모자라, 퇴근 후엔 투잡, 쓰리잡. 아이들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녀는 가끔, 아이들이 서로에게 기대며 자라는 모습에 미안해졌다.
어느 날 도착한 주차위반 고지서 한 장. 그녀는 그것을 계기로 남편의 외도를 의심했고,
의심은 점점 집착으로 번졌다.
상담을 받아봤지만 돌아온 건 짧은 한마디. "이혼해."
이혼이라는 선택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거미줄처럼 얽힌 삶, 사춘기를 겪는 첫째,
늘 눈치만 보던 둘째, 아직 너무 어린 막내.
문득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자신이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식어버린 커피잔을 어루만지며 그녀는 말이 없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따뜻함도, 차가움도 아닌 묘한 감정의 결이었다.
나는 그녀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고, 안타깝고, 화가 나고, 슬펐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
책장 가장 아래, 먼지가 얇게 쌓인 한 권을 꺼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문장이 거기 있을지도 몰라서. 나는 그 책을 건넸다.
이 책이 당신의 마음에 작게나마 머물기를.
그리고, 언제든지 이 책방에 와서 쉬었다 가도 된다고 말했다.
한동안 그녀는 말이 없었다.
맺혀 있던 눈물 한 방울이 커피잔 안에 떨어졌고,
나는 그녀가 편히 울 수 있도록 책방에 흐르던 노래의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미혼인 나에게는 낯설고도 벅찬 이야기.
나는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을,
내가 어찌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조금이라도
그녀의 아픈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