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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가 된다는 것

by 백재민 작가

군복무 중에 휴가나온 동창과 술자리를 가졌다.

살짝취한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너가 어른스러웠다. 미안하다."


갑자기 미안하다는 친구를 보며 나는 잠시 멍했다. 무슨말인지 몰랐다. 친구는 고등학교시절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나는 문과반에 진학했다. 당시는 이과, 문과를 나눠 반을 배정하던 시기였는데 문과를 지원한 남학생이 적어 남학생문과반이 우리반뿐이었다.


우리 반에는 과잉행동을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특수반에 가야할 학생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반에 배정되었다. 녀석은 수업시간이고 쉬는시간이고 돌발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갑자기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선생님말을 따라하기도 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기도했다.


반친구들은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들이 났나보다. 누군가녀석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누군가 녀석을 밀쳤다. 또 어느날은 누군가 녀석의 머리를 후려쳤다.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

체육대회도중 다른반 친구 교련복입고서 찍은 사진

육군사관학교진학을 포기하고 학교생활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던 나도 그걸 보면서 불편했던 모양이다. 까놓고 말해서 녀석이 잘못한 게 뭔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겠다고 선택한 것도 아니고, 우리반에 배정된 것도 그친구의 의지가 아닌데. 왜 때려야하나.


누군가 먼저 놀리고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다수의 학생들이 군중심리에 의해 동조했다. 교실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가 어려웠다. 다들 비웃으면 나도 비웃어야 할 것 같았다. 다들 욕하면 나도 욕해야 할 것 같았다. 분위기가 그랬다.


어떤날은 용기를내서 녀석을 두둔했다. 또 어떤날은 누가 때리면 그러지말라고 한소리했다. 나도 놀던 놈이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놈들이 그친구에게 화풀이할 때 나만큼은 인격적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우리와는 다른녀석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함께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달라진 게 있었다. 녀석은 날 의지했다. 쉬는 시간이면 종종 내 옆에 왔다. 불교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며 그 내용을 이야기해주기도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아니꼽게 봤다. "지는 다르다 이건가?"하는 뉘앙스의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이미지와 달리 나 역시 눈치를 보는성격인지라...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살갑게 대해지는 못했다. 더욱이 쎈척해야되는 '가오'가 중요한 시기아닌가. 다정한말투와 살가운 대화는 얕보이기 십상이다.


어느날 교실에서 아이들이 모여 떠들고 있었다. 나는 그 무리에 끼지못했다. 끼려고 하니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렇게 나는 왕따가 되었다. 정확히는, 녀석과 나, 둘이서 왕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반 친구를 통해 교무실에 호출됐다.


"야! 너네 담임쌤이 너 교무실로 오라고 하시던데?"


불려가면 살짝 건방졌던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부르셨습니까?" 하며 여쭙는다. 그렇게 담임쌤의 호출진위를 확인한뒤, 여러질문에 답했다. 불려가서 받았던 질문은 가지각색. 학교생활의 편의를 물으시는 경우도 있었고, 당일의 흡연여부를 물으시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 "네, 별일 없습니다"나 "담배 끊었습니다" 같은 정해져 있는 답변정도를 드렸다. 이렇게 답변드리면 담임쌤에 따라 "니가 담배를 잘도 끊었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애정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날은 예사롭지 않은 질문을 받았다.


"학급내부에서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급우가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을거다. 그런 상황에 너는 어떤생각을 했나?"


아무래도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내용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신 듯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적당히 둘러대야 할까.


정확하지 않지만 내 기억에 이렇게 답변드렸다.


"여기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최대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떻게든 함께가야 할 친구가 같은 반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마음이 좋지않습니다. 낙오하는 사람없이 함께 간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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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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