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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서 본 세상

by 백재민 작가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너가 어른스러웠다. 미안하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마음속 어딘가가 흔들리는 듯 손까지 살짝 떨렸다. 땅바닥과 허공을 응시하며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듯하던 사과가 지난날의 장면들을 주마등처럼 스쳤다. 가슴속에는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날의 공기는 묘하게 차가웠고, 그 차가운 공기에 술기운이 가시고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자, 조금은 제 정신이 돌아왔다. 손익계산이 일상적인 세상에서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대하는 일은 이제 흔하지 않다. 내가 바보처럼 순진했을 수도 있다. 그 덕분에 글 쓰는 재주를 가질 수 있었으니, 누굴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술기운에 가려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막일을 시작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복잡한 감정이 든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중에 막일을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싫었다. 4년제 대학은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었다. 먹고사는 문제와 우울이 맞물린 채 나는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그곳은 사회의 가장자리였고, 동시에 가장 날 것의 현실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가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잘려나갔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중간착취'라고도 부르던데...글쎄 잘 모르겠다.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인력사무소도 벌어야 운영될 거 아닌가. 그러나 사무를 보며 막일을 중개하는 사람과 그 일을 받아 현장에서 뛰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는 일당을 받으면서도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래야 다음에도 일거리를 줄 것 아닌가. 그게 좀 석연찮긴 했다.


내가 일할 때 당시만 하더라도 하루 10만 원을 온전히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비가 오면 일이 없었고, 일이 없어도 쉬는 날은 아니었다. '쓸만한' 사람, 다시 말해 오래 버티고 덩치가 큰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있었다. 새벽 다섯 시쯤 되면, 잠도 덜 깬 상태에서 봉고차에 구겨져 항만과 제철소로 '배달'됐다. 그런 현장에도 당연히 직급이 있고 이는 또 다른 서열이기도 하다. 관리직이 있고, 일용직이 있고, 일용직 중에서도 '짬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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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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