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의 변을 작성하며
2021년, 청년정의당 경북도당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
스물둘이었다. 대학을 두 번 자퇴한 실패자였고, 정신과약을 먹으며 우울과 싸우던 시기다. 정치경험이라곤 잠깐 선거운동을 도운 것이 전부였다. 당연하게도 선거에 출마해본 경험도 전무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서툴렀다.
후보등록부터, 출마의 변 작성까지 실무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선거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실무자께서 넌지시 말해주더라
"당선되실거에요"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소수정당의 당직을 맡는다는 건...그것도 청년이 그런자리를 노린다는 건 또래사회나 지역사회에서 불이익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일이기에 그랬다.
그런줄 알고 있음에도 거침없었다. 오히려 신나했던 기억이 난다. 막썰어횟집에서 들었던 어른의 말에 단단히 꽂혔나보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이 아드레날린에 취한 나에게 순풍맞은 돛단배처럼 증폭제 역할을 했다.
출마의 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출마의 변은 내 나름의 견해를 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이를 작성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선보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출마의 변 서두는 이렇게 썼다.
"OECD 기준으로 한국청소년 자살률은 평균의 서너배가 많습니다. 또, 한국 전체 청소년의 3분의 1이 항시적인 자살충동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상태를 보여주는 징후를 내세워 개인은 가정, 조직, 지역사회, 전체사회에 속하며 그런 구조안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가장 기본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나 역시 정의당청년들과 어느정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사실이 그랬다. 한국사회는 통치하는 집단의 입장에 과하게 몰입해 청소년을 '기업에 공급할 인적자원'으로 환원했다. 학생은 선생이 귀따갑도록 반복하던 말, "대학이 너희의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너희의 월급을 결정하긴 해"라는 식의 말로 기존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차단했다. "너희가 뭘 알겠니...나이들어봐라 그때 공부열심히 해놓을걸 하는 생각, 분명하게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대학서열은 계급재생산의 중간단계다. '문화자본'의 세습이 바로 여기서 일어난다. 좋은대학에 가고 못 가고는 학생개인의 노력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대학생의 절반이상이 강남3구와 목동, 분당 출신이라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유럽의 경우를 보자. 독일은 대학등록금이 무료이거나 학기당 수십만원 수준이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에서는 대학서열이 한국처럼 첨예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김누리교수께서 지적하셨듯, 독일청소년의 행복도가 한국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는 교육을 '경쟁'이 아닌 '성장'으로 바라보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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