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이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유년시절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부친과 조부는 백선엽을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자랑스러워했고, 나에게 그의 영웅담을 들려주며 한국전쟁을 이야기했다. 담임선생은 박정희의 산업화업적을 거론하며 그가 일으킨 혁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들먹였다. 그는 어릴적 자신의 학교를 방문한 박정희를 목격했었는데, 박정희가 선글라스를 낀 채 헬리콥터에서 내리며 자신과 악수하던 일화를 인상깊게 기억하는 듯했다.
그들의 가치관과 국가관은 자연스레 나를 세뇌했다. 그 시절 나에게 있어 군인이라함은 군복입고 적들과 싸우며 나라와 민족을 수호하는 사람이었고, 제복입고 나라와 국민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하는 사람이었다. 201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사관과에 입학했다. 12년 학교생활을 끝마치는 졸업식은 나에게 있어서 지긋지긋한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해방의 날'이었다. 이제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자퇴서를 제출했다.
이과계열의 기술직부사관을 양성하는학과는 문과체질이던 나와 맞지 않았다. 아직 나의 깊은내면과 마주하지 않은터라...핑계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군복을 입고싶은지, 내가 겪은 '나라와 민족'이라는 것이 정말 내가 충성해야 할 대상인지.
내가 부사관과에 입학할 당시는 박근혜탄핵국면을 지나 민주정부가 복귀수순을 거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부터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TV로 보면서 나는 내심 자랑스러웠다. 그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손가락질 받고 부정당할만한 존재임을 알고있었음에도, 내가 충성해야할 국가의 모습이 그들의 입에 나온 그것과 일치했다. 웃어른들은 "저런 빨갱이들이 나라 다 망친다"고 욕하더라. 훗날 문재인정부에 실망하긴 했으나 그 이후로는 나는 더 이상 빨갱이라는 단어에 담긴 함의를 긍정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의 '세뇌'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냉전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가 가리우는 진실의 존재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 이러한 의심은 탄핵국면을 거치며 확신으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보도연맹학살사건을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에 대한 사실은 기존어른들에게 교육받을 때에는 언급되지도 않던 이야기였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던 당시, 군이 북한군에 협력한 사실이 없는 양민들을 용공분자로 낙인찍어 학살했다는 것. 죄 없는 양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국군의 탄알에 죽어나갔다는 것을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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