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을 이어온 유교와 지난날의 한국
유교는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시대상에서 태어났다. 공자가 본 세상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역동적이었던만큼 상하관계가 뒤집히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며, 예(禮)는 땅에 떨어진 시대였다. 공자는 이 혼란을 바로잡고자 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명확했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알고, 그 위치에 맞는 도리를 다하는 것. 그게 유교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질서유지와 치안 자체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사회가 작동하려면 최소한의 질서는 필수다. 스웨덴만 봐도 그렇다. 2015년 이후 난민을 대거 수용하면서 치안이 무너졌다. 성폭행, 절도, 강도, 살인 같은 범죄가 급증하며 가장 기본적인 사회질서가 흔들렸다. 질서유지와 사회정의는 함께 가는 것이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도 비슷했다. 급격한 체제 전환 과정에서 국가의 치안 기능이 무너지자 마피아가 거리를 장악했다. 자유는 왔지만 안전은 사라졌다. 질서 없는 자유는 강자의 폭력으로 귀결될 뿐이다.
문제는 질서의 '목적'이다. 공자의 유교가 지향한 질서는 분명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질서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초한지의 한나라는 여러사상 중에서 유교를 골랐다. 장자도 있었고 노자도 있었지만, 봉건제를 유지하기에는 유교가 가장 이상적이었다. 황제를 꼭대기에 두고, 충과 효를 지키는 일이 좀 더 세련미 있으며, 예악으로 질서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가 미국문화가 세련되고 미국이 사용하는 영어가 세련됐다고 생각하는 일과 다르지않다. 한마디로 사학적 관점에서 봤을때, 지배계급의 지위유지와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기에 딱 맞는 이념이다.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고 유목민족을 깨부수는 걸 본 주변국들은 생각했다. "한나라가 저렇게 강하니 유교라는 통치이념에도 부강한 나라를 형성하는 뭔가가 있겠구나."했던 것이다. 신라도, 고려도, 조선도 그렇게 유교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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