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反芻), 나를 갉아먹는 생각의 회전관람차
오늘 저녁,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걷기로 했다.
롱패딩을 꺼내 입고 따뜻하게 챙겨 입은 후,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뭔가 듣고 싶었다.
조용한 거리는 좋지만, 오늘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생각은 유쾌한 친구가 아니다’**라는 영상을 발견했다.
제목은 평범했다.
그냥 가볍게 틀어본 영상이었다.
그런데, 영상을 보고 난 후
나는 내 불안과 우울감의 40% 이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영상에서는 **‘생각은 불행한 친구다’**라는 말을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을 계속 곱씹고 곱씹으며,
그것을 진실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2주 넘게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그 생각들이 나를 점점 갉아먹고 있었는데,
이게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반추(反芻)’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쉽게 대학 행정에 빠지지 말걸…”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더 나았을까?”
“이게 아니라 저걸 선택했으면 지금쯤 더 괜찮았을까?”
나는 계속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고,
지나간 일들에 대한 ‘가정’을 만들고,
그 ‘가정’을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을 반복하면 기분이 좋아졌나요?”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아니,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고민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반추(反芻)'라는 것이었다.
영상에서는 이를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 설명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이 더 강해지고 집착하게 된다는 것.
나는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내 인생이 한심하다.’
‘미래가 극복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면서 반추의 덫에 빠지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아,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생각의 회전관람차를 타고 있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반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뭘까?
영상을 더 찾아보니, 많은 해결책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현재에 집중한다’는 말을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각이 느끼는 모든 것’을 음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밥을 먹을 때 → 하나하나 씹는 감각에 집중하기
노래를 들을 때 →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음미하기
걷고 있을 때 → 바람이 스치는 느낌을 느끼기
하늘을 볼 때 → 오늘의 하늘 색을 음미하기
나는 지금까지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미 ‘현재’를 음미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침에, 그리고 밤에,
나는 그냥 걸으면서 주변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만큼은 반추에 빠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정말 오랫동안 반복되던 생각이 하나씩 평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두 주 동안 같은 생각을 반복했지만, 그 생각들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만약 그 생각들이 도움이 됐다면,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반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무의미한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은 해결된 것이 아닐까?
이제는 생각이 깊어질 때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현재를 조금 더 느껴보면서,
조금씩 반추에서 벗어나보려고 한다.
생각은 불행한 친구다.
나는 더 이상, 그 친구와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