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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하여

by 실상과 허상

사전에서는 '생각'을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사고(思考)'를 생각하고 궁리함 또는 지식을 사용하는 마음의 작용, 직관적 사고, 분석적 사고 등으로 정의한다. 사실 생각과 사고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며, 비슷한 의미로 사용됨을 고려하여, 본 글에서는 '생각'과 '사고'를 혼용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파스칼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 이라고 하듯이 생각은 우리의 존재를 의미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그러나 생각에는 부질없는 생각이나 끊임없는 근심, 걱정도 있으며, 이러한 생각이 심해지는 경우 각종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새로이 등장한 문제는 아니지만,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감에 따라 그 강도가 심해지면서, 생각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희랍어의 메타노이아(meta-noia)는 생각의 형이상학적인 확대 개념이다. 메타노이아는 메타(meta)와 노이아(noia)가 합성된 단어로, 메타는 ‘~을 초월한’, ‘더 높은’의 뜻이며, ‘노이아’는 '생각' 또는 ‘마음’을 의미이다. 따라서 메타노이아는 '마음이나 생각의 변화' 또는 '마음이나 생각의 초월'의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시간이나 공간의 개념에 구속되어 있는 마음이나 생각이 기존의 굴레에서 벗어나 초월적인 상태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굴레


과학 통신 교통수단 등의 발전에 의해 지난 100년 동안에 이루어진 물질문명에 따르는 사회 구조의 변화는 인류 역사 1 만년에 이루어진 내용보다 더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고도 성장에 반해 정신문화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부작용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불안정한 정신건강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대해,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Kuhn)은 패러다임 쉬프트 (paradigm shift)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새로운 이론이 전개될 때 기존 개념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이론이다.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현대사회속에서 움직이는 우리의 생각은 이와 같은 개념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생각의 흐름


생각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 힘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고,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창의적인 생각은 삶을 지혜롭게 이끌어 준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얽힌 일이나 지나간 일, 다가올 일에 대한 지나친 생각, 걱정, 근심은 마음을 괴롭힌다.

마음이 복잡한 일로 괴로울 때, 잠시 시간을 내어 스스로를 위로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하고, 얽힌 문제를 풀어 나갈 방향을 찾게 한다.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마치 차선 없는 큰길에서 차들이 뒤엉켰을 때 차선을 그어 흐름을 잡아 주는 일과 같다. 복잡한 생각을 각기 다른 흐름에 따라 나누고 정리할 때, 비로소 '생각의 길'이 보인다.



생각의 길


머릿속에는 즐거운 생각, 어려운 생각, 나쁜 생각 등 온갖 생각이 오간다. 즐겁고 좋은 생각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어렵고 나쁜 생각은 마음을 힘들게 한다.

생각은 일어났다 서서히 사라진다. 아무리 마음을 괴롭히던 생각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식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번 일어난 생각을 억지로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없애려 할수록 더 떠오르게 된다.일어난 생각이 제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길에 머무르게 하는 방법으로는 명상, 기도, 운동, 취미 활동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에 공통된 점이 있다면 ‘정신 집중’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을 한곳에 모을 때 ‘마음의 평화’에 다가갈 수 있다.



생각의 자취

돌을 연못에 던지면 물결이 퍼져 나가고, 배가 지나가면 파도가 퍼져 나가며, 태양에서 출발한 빛은 멀리 퍼져 우리에게 다가온다. 눈에 보이지 않게 퍼져 나가는 것들도 많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소리가 퍼져 나가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라디오·TV 등은 송신탑에서 전파 신호를 퍼뜨린다.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전파와 소리는 각자의 신호를 지니고 서로 부딪치지 않으며, 원형이나 구의 형태로 자연의 질서에 따라 퍼져 나간다.

생각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은 마음의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간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크고 작은 생각들은 각자의 길을 유지하며 문제를 해결하기도,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면서 퍼져 나간다. 이렇게 퍼져 나가는 생각은 '나무의 결', 혹은 나이테처럼 마음속에 자취를 남긴다. '나무의 결'에서 겨울의 결은 진하고 촘촘하며, 여름의 결은 부드럽고 넓다.

마음속에서 퍼져 나가는 모습이 실상이라면, 그에 남는 자취는 허상일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키고 어려운 생각은 겨울의 결로 남고, 문제를 해결하며 즐거운 생각은 여름의 결로 남는다.



생각의 방향성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해본 이들에게는 매우 적절하게 느껴진다. 물론 생각이 정말로 머릿속을 맴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이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을 해볼 수는 있다.

방향이 없는 생각은 머릿속을 이리저리 헤매다 다른 생각들과 섞이거나 사라지곤 한다. 반면, 일정한 방향을 지닌 생각은 제 길을 유지하며 쉽게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는다. 다만 때때로 깨어나듯 떠오를 뿐,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마음속에서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돌고 있는 생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생각이 머릿속의 넓은 공간에서 일어난다고 본다면, 넓은 차도에 차선을 긋듯 생각이 흘러갈 길을 미리 열어주는 마음의 연습이, 생각들 사이의 충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물레방아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주변 곳곳에 ‘방앗간’이 있었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방앗간은 시냇가의 물레방아와 함께 있었고, 이제는 아득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가끔 우리는 물레방아 그림을 마주한다. 그림 속 물레방아는 빙글빙글 돌며 물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한 줄기 물소리가 마음속에 들어와 빙글빙글 돌다가, 다시 시냇물의 흐름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걱정과 근심이 있다. 생각의 물레방아는 마음속에 들어온 걱정과 근심의 소리를 빙글빙글 돌게 하다가, 마침내 그것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도록 내보낸다.



생각의 지혜


생각은 다양한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생겨나와, 새로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면서, 지혜로운 생각도, 쓸데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생각의 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잘못된 생각은 우리를 근심과 걱정의 수렁에서 헤어 나지 못하게 하며, 지혜로운 생각은 우리의 깊은 마음 속에 숨어있는 자신을 발견 하게하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며 우주의 진리를 배우도록 도와준다.



쓸데없는 생각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바람직한 생각보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자 말로 ‘잡념’이라고 한다. 잡념은 풀밭에 나는 잡초와 같아서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푸른 풀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잡초를 뽑아야 하고, 주위의 못 쓰는 썩은 나무 가지 등도 치워야 한다.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잡념을 뽑아내거나 내버려야 한다. 그러나 잡념은 잡초와 달라서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놀라서 뛰어갈 때 '엄마'를 외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이럴 수가!' '아이고!' 등의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의 주변에는 저절로 나오는 말의 소리가 있다. 영어권에서는 'Oh my God'이라는 표현이 있으며, 하늘을 나는 철새들은 떼를 지어 이동할 때 울음 소리를 높인다. 또한 운동 선수들은 힘을 내기 위해 구호를 외치고, 관중들은 소리 높여 응원한다. 마법사는 마법의 묘기를 보이기 위해 주문을 요구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말의 소리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

잡념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탄과도 같다. 잡념의 사탄은 물리치지 않으면 점점 커지고 그 기세를 높인다. 잡념의 사탄은 쉽고 단순한 말의 소리를 겁내고 무서워한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러한 말의 소리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불가에서는 ‘’, ‘’, 요가에서는 ‘’ 등을 사용한다. 이러한 말의 소리 중 자신에게 적합한 말을 찾아 반복하여 외우고 잡념을 내보내는 연습을 계속할 때, 우리는 떠오르는 쓸데없는 잡념이 우리의 마음 속에 설 자리가 없도록 쫓아낼 수 있다.



물러가라


나는 어릴 때부터 두려움이 많았다. 높은 곳도 두려웠고, 어두운 곳도 두려워서, 두렵고 무서운 곳은 피해가며 살아왔다. 또한, 어릴 때 동네에서 무당이 춤추며 굿하는 장면도 피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굿하는 장소는 피해갔지만, 굿하는 소리는 귀에 남았고,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소리는 장구 소리와 함께 섞여 있던 무당의 '~야 물러가라'였던 것 같다.

커서 성경을 대하면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구절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어렸을 때 들었던 무당의 소리가 떠올랐다. 또한, 연속 사극을 보면서 임금님이 신하를 준엄하게 꾸짖을 때 '물러가라'는 대목도 귀에 들어왔다.

고희를 넘으면서 '물러가라'는 말이 다시 귀에 들어오면서, 이 말에 어떤 알지 못하는 힘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 주위에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의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이 '물러가라'는 깊은 마음의 소리로 우리의 마음 속에 울려 퍼질 때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열치열


마음이 심란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들은 서로 연결되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힘이 있으며, 지치지도 않고, 마음을 휘저으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좋은 일이 떠오르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일이 떠오르면 화가 난다.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잡다한 생각들은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이다. 허상들은 뿌리가 없어서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생각들은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끊임없이 괴롭힐 수 있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은 '더위를 더위로 이긴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을 생각으로 이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생각을 호흡에만 완전히 집중할 때, 그 속에서 나오는 생각의 힘은 허상들의 생각을 물리치고 우리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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