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상과 허상 Oct 18. 2024

순간에 대하여

순간(瞬間)은 눈 깜짝하는 사이, 아주 짧은 시간을 의미하며, 어떤 일이나 사물 현상이 일어나는 바로 그때를 지칭하는 불교 용어인 찰나(刹那)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순간(瞬間)이나 찰나(刹那)는 한없이 짧은 시간들이지만, 그 순간(瞬間)들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우리의 삶을 이룬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 중에는 즐겁고, 기쁜 순간들도 있지만, 어렵고 슬픈 순간들도 있다. 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우리는 그 순간들을 기억할 따름이다. 

현대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지쳐 있는 즈음에, 정신 심리 치료의학에서는 현재 순간(present time)의 느낌을 이용한 여러가지 치유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재 순간의 느낌을 이용한 여러가지 치유 방식은 그 이름을 각각 달리 하지만, 불교나 도교 등의 동양사상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관계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결코 낯선 가르침이 아니다.


호흡으로 느끼는 현재의 순간

현재의 순간은 한없이 짧고,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의 순간과 그 순간들의 연속이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한번 지나간 현재의 순간은 과거가 되고, 다가올 현재의 순간은 미래가 된다. 이처럼 한없이 짧은 현재의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말을 하려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현재의 순간은 마치 공기와 같다. 공기는 우리의 주변에 항상 존재하며, 호흡을 통해 생명의 힘을 주지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 현재의 순간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이지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소중함을 잊으며 살아가게 된다.

현재의 순간은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느끼고 알아차릴 뿐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한 순간에 깨치는 마음과 정신의 수련은 예로부터 전해져 왔지만, 오늘날 스트레스가 만연하여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호흡하는 현재의 순간

호흡은 다른 내장 기관과 마찬가지로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호흡이 다른 내장 기관과 다른 점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호흡은 상황에 따라 길게, 깊게, 빠르게, 느리게 조절할 수 있으며, 이는 의식이 몸의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대표적인 예다.

이와 같이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의식이 호흡을 느끼고, 호흡에 집중할 때, 우리는 호흡하는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된다. 호흡은 이어지는 흐름이지만, 그 흐름은 지극히 짧은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이러한 현재의 순간을 느끼게 하는 의식적 호흡과 연결되는 정신 활동에는 주의(attention), 알아차림(awareness), 집중(concentration) 등이 포함된다.


오묘한 '지금'의 순간 

'지금'이라는 말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바로 이때' 또는 '현재'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영어로는 now 또는 present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의 바로 이 순간은 잡을 수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말 하는 순간 지나가 버리고 과거로 변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순간은 지금의 순간을 지나 과거로 흘러간다. 지금의 순간은 과거 와 미래의 분기점이며, 과거와 미래와 시간을 만드는 원형이다. 

'지금'의 이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시간도 없는, 지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이렇게 짧은 순간들의 연속은 우리의 삶을 이룬다. 오묘하기만 한 지금의 순간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느끼고 인지할 수 있으며, 그 순간의 느낌은 영원하고 우리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현재'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는 '지금'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도교의 무(無), 선도의 호흡과 이(氣), 유교 성리학의 이기(理氣), 불교의 공(空), 기독교의 현존(現存) 사상과 맥을 같이하며, 정신의학에서도 정신건강 치료요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원한 순간

순간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표현일 수 있지만,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의 순간, 기다리던 소식을 받는 환희의 순간, 또는 어려운 고비를 넘겼던 힘든 순간 등, 많은 순간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쉰다.
 이러한 영원한 순간들 중 하나는 호흡으로 느끼는 현재의 순간일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서 벗어나고,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현재의 순간은 우리가 자연의 흐름을 따르며,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지금의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순간의 영원성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진다.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위한 불노초를 구하려는 중국 진시황제의 이야기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완성하고 거대한 권력과 재력을 지녔던 시황제는 죽음이라는 생명의 한계를 불노초 영약의 힘을 빌려 넘어가려고 하였다.

예술가나 달인들에게 생명은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정신이다. 그들은 하는 일에 열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는 일을 사랑하고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온 힘과 정성을 기울인다. 작품이 가지는 생명의 힘은 그 작품이 영원하도록 인도하며, 영원한 생명을 지닌 작품은 우리 마음속의 영혼을 움직인다. 

이러한 생명에 대해 기독교는 영원한 생명을 제시한다.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본성이며, 우리 마음속의 영혼을 일깨운다. 구약에서는 생명의 기원을 하나님의 입김, 호흡, 숨, 바람, 영에 두고, 히브리어 '루아흐'(ruach)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즉, 생명은 움직임을 의미한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혼을 맑고 성스럽게 가꿀 때 영원한 생명이 우리와 함께한다.


멈춤의 순간

골프의 황제인 타이거 우즈는 일화도 많이 있다. 몇 해 전에는 타이거 선수가 티오프 스윙을 할 때 주위에 있던 관중석에서 작은 소음이 일었고, 타이거 선수는 공을 맞추려고 내려오던 골프채의 스윙을 중간에서 멈추었고, 골프를 아는 사람들은 '아니 어떻게 스윙을 중간에서 멈출 수가 있나'하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진정 우리 생활에서 멈춤의 순간이 없다면 어떨까? 교통신호에서 빨강불이 없고, 수돗물이 멈추지 않고, 나무가 끝없이 자라고 등, 어려운 일들이 많을 것 같다.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지르고 싸우는 순간, 실수를 범하는 순간 등, 멈출 수만 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순간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끝없는 바다의 수평선, 깊은 산속의 적막함 등이 주는 평온한 순간이나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가질 수 있는 침묵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고요함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멈춤은 우리의 생활과 함께한다. 끝없는 바다의 수평선, 깊은 산속의 적막함 등이 주는 평온한 순간이나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가지는 침묵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고요함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지르고 싸우는 순간, 잘못 실수를 범하는 순간 등, 멈출 수만 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순간들도 있다. 

요컨대 삶은 그 모든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한다. 기쁨의 순간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고, 어렵고 힘든 순간은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틈인가 힘들었던 순간이 돌이키지 못할 정도로 변해져 있음을 경험할 때도 있다. 그러고는 지나간 그때 그 순간을 멈출 수가 있었으면 하고 푸념하기도 한다. 그게 형제간이나 부모 자식과의 다툼이었다면, 그때 그 순간을 참았었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멈춤의 순간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호흡이나 심장이 멈추면 생명에 위협을 주지만, 멈춤이 멈춤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활동으로 이어진다면, 멈춤은 새로운 시작을 향하는 잠시의 죽음이다. 따라서 순간의 멈춤은 새로운 생명의 길로 거듭나는 새로운 시작의 근원지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멈춤에서 활동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탈바꿈은 태동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이 힘은 삶의 중심을 유지하는 생명의 힘이며, 이러한 태동의 힘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위의 유혹과 인간 관계의 갈등에서 보호해 준다.


순간적 망각

2020년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연기되어 2021년에 개최되었다. 올림픽의 꽃으로 관심을 모은 체조경기에 출전한 미국의 시몬 바일스(Simone Biles)는 2016년 올림픽에서 체조 4관왕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뜻밖에 시몬 바일스는 기계체조 평균대 경기에서 공중에서 회전하고 내려오는 마지막 동작 중 균형을 잃고 첫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정신적 스트레스의 이유로 기권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어서 시몬 바일스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주의력 결핍 과잉 활동 장애(ADHD)'를 가지고 있다고 발표하였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았다. '주의력 결핍 과잉 활동 장애'가 어떻게 순간적으로 균형감각을 잃게 하는지는 의학의 과제이겠지만, 순간적 망각의 결과는 엄청나다.


순간(瞬間)과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

주위의 분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해 보았다. 여러가지 대답이 있었지먄, 그중 가장 인상깊고 많은 분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인간관계' 였다. 이러한 중요한 인간관계의 시작은 가족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고사성어는 우리 조상들의 얼이 섞여 있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도시 중심의 현대사회로 오면서 전통적인 대가족제도는 그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가화만사성의 가르침은 우리 현재의 핵가족 내에서도 적용되는 매우 중요한 생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값진 가화만사성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 신앙과 믿음을 기초로 하는 성가정도 생각할 수 있고, 좋은 가르침들을 공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온갖 스트레스와 싸워가며 생활하는 현대가정의 현실은 우리를 복합된 순간의 흐름으로 인도한다. 순간 중에는 기쁘고 즐거운 순간도 있고, 슬프고 가슴 아픈 순간도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과, 특히 가족과 충돌하는 순간도 있다. 이러한 순간들이 걱정, 근심, 슬픔, 아픔, 미움 등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마음속에 사무친 억울하고 가슴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우리를 괴롭히는 순간들도 있다.

이러한 순간들을 생활속에서 그때 그때 적절히 다스리고 해소할 수 있다면 인간관계 특히 가족 간의 관계는 물론 많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우리 본연의 자세로 임할 수 있다. 이러한 순간의 다스림은 우리의 마음으로 통하는 귀와 입을 다스리는 일인만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순간의 다스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수양이 필요하며, 이는 신앙의 도움이나 여러가지 명상법 등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다. 


번갯불이 번쩍이는 순간

무섭게 내리치는 천둥 번개는 밤잠을 설치게 한다. 천둥 번개가 하늘에서는 동시 상황이지만, 빛과 소리가 각각 다른 속도로 하늘로부터 땅까지 먼 거리를 내려오다 보니, 빛의 속도로 내려오는 번개가 우리에게 먼저 도착하게 되고, 이어서 얼마 후 소리 속도로 내려오는 천둥이 도착하게 된다.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은 순식간이다. 그 순간은 아주 짧아서 잡을 수도 없고, 말로 담을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감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기쁜 순간도, 슬픈 순간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을 느낀다고 말하는 순간, 그 기쁘거나 슬픈 순간은 이미 지나간 순간이 된다. 즉, 순간은 말로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말로 할 수 없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자가 모여서 물체를 이루고, 세포가 모여서 사람을 이루듯이, 순간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이룬다. 순간은 삶의 근원지이다. 이러한 순간을 느낄 때 우리는 생명의 근원을 느낄 수 있다.


부딪치는 순간

우리는 일 뿐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삶을 부딪치는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자동차의 충돌처럼 피해야하는 위험한 부딪침의 순간들이 있다. 특히 다른 사람 들과의 지나친 의견 충돌이나 자신의 감정의 폭발 등의 순간들은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이러한 충돌이 부모와 자식 간에 있게 되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게 되고, 그러한 순간들을 막을 수만 있었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지나간 순간의 오류를 반복하게도 되고, 이에 대해 더 큰 후회를 하게도 된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지나친 경우에는 전문가의 상담이 요구된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 또는 예방적인 차원에서는 적절한 책이나 여러가지 명상법들을 접하게 되며, 그 중의 한 방법이 명상의 방법을 이용한 순간을 다루는 마음의 수양이다.


지나간 상처의 기억

부딪쳤던 지나간 어느 순간의 일이 너무 억울하고 뼈에 사무치게 가슴 아팠다면 그 기억은 과거의 순간을 지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도 지배하게 된다. 이와 같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는 상처의 기억은 '영원한 과거'가 된다. 사실 현대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암이 우리를 공격할 때 암 모두를 제거해야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다. 암이 더이상 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암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뼈아픈 지나간 상처가 더 이상 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살아 갈 수 있다.


지혜의 눈

지혜는 배우는 게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지혜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며, 우리의 삶을 풍요로움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지혜를 가진 눈을 혜안(慧眼)이라고 한다. 혜안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석가모니가 불법을 전할 때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극락이 어디에 있다?'하고 묻는다. 이 질문에 석가모니는 그 할머니에게 '저 산 너머에 있다'라고 답한다. 대답을 들은 그 할머니는 실망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건강이 저 산을 너머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한 젊은이가 같은 질문을 한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그 젊은이에게 '저 하늘위에 있다'라고 답하고 그 젊은이 역시 실망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저 하늘을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 대화를 들은 제자들이 '같은 질문에 두가지 다른 답을 주셨는데 어느 대답이 맞습니까?'라고 석가모니께 묻는다. 석가모니는 '그 할머니에게는 극락이 저 산 너머에 있고, 그 젊은이에게는 저 하늘위에 있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제자들이 다시 묻는다. '그러면 우리에게 극락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석가모니는 '당신들 마음안에 있다'라고 답한다. 


현존에 대하여

현존(現存)은 '현재 살아 있음' 또는 '현재에 있음'으로 정의하며, 영어로는 presence, being present, 또는 being 으로 표현한다. 현존에서 말하는 현재는 영어 문법의 과거, 현재, 미래의 현재형과는 차이가 있다. 문법의 현재형은 현재의 기간이 비교적 넓은 편임에 비해 신학 또는 실제 삶의 현존(現存)에서의 현재는 지금의 바로 이 순간을 의미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은 인지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인지하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지나간 순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재의 순간을 의식적으로, 지속적으로 느끼려는 노력이 마음챙김 명상인 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이나 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의 중심 과제이다. 이에 따라, 이글에서 사용하는 명상에서의 '현재'는 현존의 의미를 뜻하는 '현재의 순간'의 표현임을 강조한다. 

이전 13화 호흡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