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은 숨을 코나 입을 통하여 내어 쉬고 들이쉬는 단순한 활동을 의미하지만, 호흡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호흡은 자율신경계에 속하는 폐의 활동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호흡은 다른 자율신경계의 활동과는 달리 우리에게 호흡의 흐름 등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살아있는 생명의 호흡
호흡은 생명이다. 호흡이 없으면 생명이 없고, 호흡을 느끼면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호흡은 생명의 호흡이다. 호흡은 생명을 주고, 생명은 자연의 힘을 받는다. 조그마한 꽃씨 하나가 땅 속에서 변화되어 생명의 힘으로 무거운 땅을 헤치고 솟아오르고, 나무의 뿌리는 땅속의 물을 높이 자란 나무 꼭대기까지 공급한다. 호흡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공기나 물처럼 귀하면서도 그 귀함을 내세우지 않는다.
지금 행하는 호흡은 현재이다. 호흡을 느낄 때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경험한다. 현재의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지극히 짧지만 영원한 순간이다. 호흡이 이어질 때 현재도 이어지고 우리는 현재 속에 머무르게 된다. 과거나 미래 등의 시간은 인간이 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자연의 흐름은 시간을 따르지 않는다. 인간이 시간의 잣대로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호흡은 소리이다. 호흡의 숨소리는 공기가 우리의 몸 안에서 이동하는 생명의 소리이다. 숨소리는 새소리나 파도소리처럼 보이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바람소리나 봄비 맞아 움터 나는 나뭇잎 소리처럼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모아야 들리는 마음의 소리이다.
호흡은 신비이다. 호흡은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우주는 150억년, 지구는 40억년에 걸쳐 자연의 천기(天氣)를 형성한다. 우리는 이러한 대자연의 천기(天氣)를 호흡하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흐름을 증거한다.
호흡의 신비성
호흡은 살아있는 생명의 징표이다. 호흡은 몸 밖의 공기를 몸안으로 들이마시고, 그 중에 산소를 흡수하고, 몸 안의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배출한다. 들이마신 산소는 혈액속으로 들어가 몸 안의 각 세포조직에 전달되어, 음식물의 소화 등을 통하여 삶에 필요한 활력을 공급한다. 인체의 5장6부 기능은 자율신경계에 의해 무의식 중에 움직이지만, 그 중에 호흡은 인위적으로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다.
기독교에서의 호흡은 '생명'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느님이 인류의 시작인 아담에게 숨 [히브리어로 '루아흐'(ruach)]을 불어넣어 생명을 준다. 예수님은 부활 후 다락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보낸다. [참고: 요한복음 20:21-22]
이와 같이 호흡은 생명의 원천이다. 호흡을 느낄 때 우리는 현재 순간 속에 있게 된다. 호흡 속에는 우리를 스스로 움직이는 무위의 자연과 하나되게 하는 우주의 신비가 있고, 하느님의 창조의 신비가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의 신비가 있다.
호흡의 현재성
호흡은 생명이며, 언제나 현재이다. 현재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호흡은 생명의 원천이다. 호흡에는 과거의 호흡이나 미래의 호흡이 없듯이, 과거도 미래도 없다. 호흡은 영원한 현재의 순간을 느끼고 현재 속에 머물게 한다. 호흡을 느낄 때는 우리의 의식이 현재 안에 있으므로,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호흡은 시간의 제한을 넘어 우리를 현재 안에서 살게 한다. 그 안에는 과거의 상처도, 미움도, 미래의 걱정도 없다. 이러한 현재의 순간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이루며, 이러한 현재의 순간은 삶의 원형이다. 이러한 호흡에 주의를 기울일 때 우리는 되살아나는 과거 상처의 기억에서 벗어나 현재만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다.
호흡의 소리는 바람의 소리와 같은 이치이다. 바람이 불 때 공기가 나뭇잎 등에 부딪치며 나오는 소리가 바람소리라고 한다면, 호흡할 때 코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호흡의 숨소리로 본다. 이러한 소리는 귀를 통하여 듣게 되고, 이러한 소리를 만드는 폐나 배의 움직임은 눈이나 느낌을 통하여 감지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호흡의 소리에 마음의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숨어있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호흡의 소리는 몸과 마음의 집중이 이루어 내는 우리 자신의 생명과 존재에 대한 현존하는 현재의 소리이다.
호흡을 내려요
우리는 '내린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불 볏 더위에 시원한 바람은 온도를 내려주어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고, 무거운 보따리도 마음의 짐도 내려 놓으면 몸이 편해지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요즈음은 버스에서 내릴 때 벨을 눌러서 하차 신호를 주지만, 예전에는 '다음에 내려요' 라고 큰 소리로 알리고, 옆에 있는 찬구들에게는 '야 내리자' 라고 신호를 주기도 했다. 이 때 버스에 승객이 많아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땅을 적셔주고 만물을 소생시켜준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땅이 메마르고 오곡백과가 시들게 되며, 몸안으로 들어온 음식도 잘 내려가지 않으면 속이 불편 해진다.
이러한 내림이 우리의 인체에 나타나는 현상을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水升火降)의 원리로 설명한다. 음양설을 바탕으로 발전한 수승화강의 원리는 물의 찬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해의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간다는 자연의 법칙이 우리의 몸안에서도 동일하게 움직인다는 이론이다. 즉 차가운 물의 에너지인 수기(水氣)는 신장(腎臟) [다른 이름: 콩팥]에서 머리끝까지 위로 올라가고, 뜨거운 불의 에너지인 화기(火氣)는 머리끝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이때 신장에서 올라가는 차가운 기운인 수기(水氣)는 머리로 올라가 머리를 맑고 차갑게 머리의 화기를 식히는 역할 등을 한다.
호흡을 '내린다'라는 말은 '마음을 비운다', '욕심을 덜어 낸다', '잡념을 벗어 버린다' 등의 표현과 연결되어 사용한다. 물이 아래로 스며 내려가듯이 호흡을 아래로 내리면 마음도 비워지고, 욕심도 없어지고, 생각도 내려간다. 호흡을 통해 우리의 몸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기운도 폐에서 더 아래쪽에 있는 단전으로 내려가야 속이 편해지고 온갖 생각과 걱정 근심을 벗어버리게 된다. 결국 호흡에 집중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호흡 소리에 실려 나가는 걱정과 근심
걱정과 근심은 불안한 생각과 애태우는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로서 '걱정이 많다'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등 순수한 우리말로 알려져 있다. 살다 보면 자녀 걱정,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 등 걱정 근심이 없을 수는 없지만, 때로는 쓸데없는 걱정과 오만가지 생각으로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걱정과 근심의 차이는 바늘과 실의 차이와 같아서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이 많으면 근심이 늘고, 걱정이 없으면 근심도 사라진다. 걱정은 생각에서 비롯하고, 걱정이 많아지면 소화 등 몸에 영향을 미치고, 근심이 늘면 마음의 병이 된다.
걱정과 근심은 생각에서 비롯하여 마음에 자리한다.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비우면 걱정과 근심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마치 배수관을 열 때 고여 있는 물이 소용돌이 치면서 내려가듯이,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걱정과 근심이 생길 때마다, 호흡의 문을 열고 떠오르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커'하고 기침하듯이 내쉬는 호흡 소리에 실려 밖으로 날려 보내는 연습을 할 수 있다.
걱정과 근심을 벗어나는 호흡
현대 생활속에서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쉴 새 없이 바쁘게 생활한다. 구태여 시간들을 크게 나누어 본다면, 일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 노래하는 시간, 노는 시간 등 많은 구분이 있다. 그 중에는 즐거운 시간도 있고 어려운 시간도 있다. 또한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쉬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번잡한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기도하는 시간, 명상하는 시간도 있다.
최근에 들어 '현존' 또는 '현재의 순간'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말들의 종교적 철학적 깊이는 우리 인간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가 이러한 순간을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느낌은 느끼는 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느낌 가운데 생명의 느낌이 호흡이다. 호흡의 느낌은 호흡을 의식할 때 이루어진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공기를 느끼면서 들이마시는 공기, 잠시 쉬고, 내어 쉬는 공기, 천천히 마음 속으로 넷까지 세면서 (하나, 들 셋, 넷) 매일 매일 조금씩, 짬이나 시간이 날 때 마다, 걸어 다닐 때, 또는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시도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가벼워지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짜증이 없어진다.
호흡은 언제나 현재이다. 호흡을 느끼는 동안은 현재 속에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걱정과 근심은 과거와 미래의 일이다. 현재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호흡을 통해 현재를 느끼는 시도는 여러 종류의 명상에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