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묵상

삶의 작품

by 실상과 허상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우주 삼라만상의 온갖 사물과 현상을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갈래로 나누어 본다면, 물질세계는 실상의 계(系), 정신세계는 허상의 계(系)로 투사될 수 있다. 이 때 음과 양의 조화에 따르는 실상과 허상의 관계는 마치 양극을 지닌 자석의 성질과 같이, 삼라만상의 최대 단위에서 최소 단위까지 온갖 사물과 현상에 부족함이 없이 골 고루 작용한다. 갈라진 실상의 계(系)안에 또 다른 실상과 허상이 있고, 허상의 계(系)안에도 또 다른 실상과 허상이 있으며, 이러한 양극 구성은 삼라만상의 최소 단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한 예는 우리의 주변에 많이 있으며, "작품"을 일 예로 들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의 소중한 작품을 만들 때 손의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작품에 부여하는 정신이다. 정신계에 속하는 생각이나 마음과 감정이 물질계에 속하는 "작품"에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물질계에 속하는 작품을 주의 깊게 볼 때 우리는 작품 속에 숨어있는 예술가의 정성과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이 물질계에 속하는 작품 속에는 정신계의 흐름이 숨어있으며, 정신계의 경험, 느낌 등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진정한 작품의 이해는 물질계나 정신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전체적 차원이어야 한다.

삼라만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의지에 관계없이 실상과 허상의 양극 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실상이 허상을 누를 때도 있고, 허상이 실상을 누를 때도 있고, 실상인지 허상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 우리의 삶을 이끄는 실상과 허상의 조화는 삼라만상 우주 원리에 해당한다. 지나치게 실상이 강조되거나 허상이 강조될 때, 실상과 허상의 조화가 깨어지고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상과 허상의 조화는 전체적 차원이다. 삶의 여러 문제들을 전체적 또는 작품적 차원의 묵상을 통하여 문제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면을 발견할 때 우리의 삶은 우주 원리에 따르는 실상과 허상의 조화를 이룬다.



삶의 퍼즐에서의 인간관계

일생은 삶의 작품이며, 삶의 작품은 삶을 있는 그대로 투사하는 살아있는 실상이다. 삶의 작품은 제각기 특성을 지닌 수많은 사건들이 서로를 연계하여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마치 퍼즐과도 같다. 마음의 공간에 맺어지는 삶의 퍼즐은 남아있는 조각이 언제나 있기에 항상 미완성이다. 게다가 멋지게 잘 맞추어졌다고 보이는 부분에 조차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빠진 조각, 엇갈려왔는 조각들이 여기 저기에 있으니, 삶의 퍼즐에는 완전함이 없다.

삶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삶의 퍼즐은 개인의 생애에 따라 길기도, 짧기도, 크기도, 작기도 하다. 삶의 퍼즐을 이루는 퍼즐의 조각들은 저마다 특정한 사건이나 팩트(fact) 등의 실상을 의미하며, 인간관계 등의 매체를 통하여 서로 맞물리게 된다. 맞물리는 주위의 조각과의 이음새에는 좋고, 나쁘고 힘든 다양한 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삶의 퍼즐은 사건 중심이며, 인간관계는 사건에 연계되는 팩트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이를 실상과 허상의 관점으로 볼 때 "사건에 연계된 인간관계"와 "인간관계에 연계된 사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건에 연계된 인간관계"의 경우 인간관계는 사건을 보완하지만, "인간관계에 연계된 사건"의 인간관계는 사건의 실상을 넘어 감정 등의 허상에 매이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삶의 양과 질

삶을 양과 질로 나누어 본다면, 삶의 양은 수명 삶의 질은 일생에 해당한다. 수명은 수평적이며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이며, 일생은 직선적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의 수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직선적 시간인 수명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이 백년이라 하여도 우주의 150억년 역사에 비하면 티끌 한점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일생의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일생은 유구한 우주의 역사에 남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현대생활에서 시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간에 착오가 생기면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도 놓치게 되고, 비행기도 타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시간을 시계를 통해서 확인하며 시간에 맞추어 생활을 진행한다. 이때 시간은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기계적으로 똑딱 똑딱 흘러간다. 역사적인 시간은 객관적이고 직선적이며 수평적인 연대표적인 기간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중요한 회의에 갈 때 옆에 친구가 말한다 "늦었다, 시간 없어, 빨리 가자" 또는 시험 볼 때 시간이 모지라서 끝을 못내는 경우도 있다. 또는 "좋은 시간 가지세요"라고 인사도 한다. 이러한 경우 시간은 형태는 없지만 마시는 물처럼 감지할 수 있는 양적 또는 공간적 의미이다. 즉 수평적이고 직선적인 시간의 순간 또는 기간을 수직적으로 세워서 그 안에 내재하는 내용을 관찰하는 주관적인 의미이다.

그리스의 헬라어에서는 시간을 뜻할 때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의 두단어를 사용한다.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뜻할 때는 "크로노스", 순간이나, 시절, 기회, 때를 뜻할 때는 "카이로스"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수명과 일생에는 차이가 있다.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길어진 인간의 수명을 직선적 시간으로 백년 이라고 한다면, 백년의 흐름은 우주 150억년, 인류 12만년 역사의 흐름에 비할 때 티끌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생은 햇수나 기간에 관계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수많은 순간과 사건을 포함하는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삶의 기간은 사람에 따라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인명은 하늘에 달려있다(人命在天)"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내용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각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