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할아버지

by 푸른 잎사귀

서기 1982년 7월 17일 토요일 날씨 흐림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동생

일어난 시각 : 오전 6시 14분


오늘은 그림을 그렸다. 내 동생도 그렸다. 할아버지를 그렸다. 할아버지께서 보시더니 웃으셨다. 할아버지가 웃으시니까 내 마음도 즐거웠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수수께끼를 내고 재미있게 놀았다.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할아버지랑 함께 놀던 시간이 참으로 그립다.

그 시간만 그리울 뿐이다.

지금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없다.


어릴 때는 할아버지께 수수께끼도 내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다.

그 시절 철없던 시절에 좋게 생각했던 할아버지께서 엄마께 하신 일을 커서 듣게 되었는데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친아빠가 아니시다.

외할머니께서 엄마를 임신하시고 8개월이 되셨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되어 그 충격으로 조산하게 되어

엄마는 8개월 만에 태어나셨다.

인큐베이터도 없던 그 시절.

죽으면 죽을 수 있는 약하디 약한 생명은 죽지 않고 살았다.

외할머니께서는 몸이 많이 약하셨고

외가 쪽이 잘 살았기에 유모가 엄마를 살뜰히 여섯 살 때까지 돌보았는데

팔삭둥이어서 그런지 우리 친정 엄마도 몸이 약하시다.

젊은 나이에 딸하나 데리고 평생 과부로 늙게 할 수 없었던 외할머니의 엄마는(증조할머니)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한테 딸을 재혼을 시키셨다.


할아버지는 엄마가 친딸이 아니니

초등학교만 보내시고 일만 시키셨다.

사춘기 여학생이 양갈래 머리를 따고

학교가 아닌 소를 끌고 꼴을 먹이는데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한복 만드는 걸 배우고 싶다고 울며불며 매달렸어도 안된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아들만 귀하게 여기셔서

엄마 남동생인 외삼촌만 닭을 삶으면 닭다리며 살코기 맛있는 걸 주시고

딸들은 닭모가지나 닭발이나 닭껍질 등을 먹으라 했다 하니

한 많은 그 세월을 엄마는 어찌 사셨을까 싶다.


엄마가 당했던 어린 시절의 슬픔은

자식들을 향한 무조건적 헌신과 희생으로 자리 잡아

우리 세 자매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게 되기도 했다.


암튼

언제 기회가 된다면

엄마의 인생얘기도 글로 써보고 싶긴 하다.


할아버지가 웃으시니 내 마음도 즐거웠던 열 살.


그땐 알았을까

그 웃음과 즐거움이

증오와 미움이 되고

할아버지는 이젠 내 기억에서 잊힌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걸.


인생이란 항상 생각지 못한 변수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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