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이 힘들거나 부당함을 당할 때, 직장 상사나 동료들끼리 치사한 일이 벌어질 때, 월급이 깎이고 차별을 받을 때 그럴 때마다 비빌 언덕을 생각하면 버티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비빌 언덕’은 말 그대로 보살펴 주고 이끌어 주는 미더운 대상이 아니었다. 아직은 손에 잡히지 않은 상태였지만 곧 이직을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채용공고였다. 곧 실체가 될 것이라 믿으며 하루하루 마음관리를 하며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자 생각하며 견딜 수 있는 그 희망이 ‘비빌언덕’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비빌 언덕이 없어져버렸다. 사람일이라는 게 정말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1월에 채용공고가 나오면 서류를 잘 작성해서 내야지 하고 계획했었고
2월에 1차 서류합격 후 면접을 보고 나면 최종합격자 발표 날을 기대하는 꿈을 꾸었고
3월에는 발령이 나서 새 학기에 맞춰 출근을 하게 될 모습을 그려보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공고가 나오지를 않았다.
전에 일했던 돌봄 교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학급수가 줄어들어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돌봄 교사들끼리 학교 간 발령이 나고 있고, 정년이 되어 그만두는 돌봄 교사 다음으로 올 사람이 이미 배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모집공고가 없는 거였다.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병설유치원도 폐원이 된 곳이 많다.
그 선생님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처음 초등학교 돌봄 교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시간제로 일할 오후 돌봄 교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마침 공부하던 것이 있어서 시간활용에 좋겠다고 생각하여 일을 하게 되었었다.
전일제 선생님들이 있었으나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많이 입학되어 추가로 돌봄 교사가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주 15시간 미만의 일이었고 시간당 최저시급정도의 금액을 받다 보니 월급이 적었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돌봄 교실이라는 독립된 장소에서 아동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전일제 교사들의 텃세와 학교 돌봄 관련 교사들의 비협조적인 분위기, 학교행사 등으로 갑자기 연락을 받게 되어 그날 일을 할 수 없던가, 방학 때면 오전, 오후 돌아가면서 하루에 2~3시간씩 아이들을 관리하게 만드는 시스템들로 인해 시간을 활용하려 들어간 나에게는 점점 맞지 않는 상황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교대시간에 돌봄 담당교사가 제시간에 와주지 않아서 시간 외의 근무를 하면서도 돈을 받을 수 없는 여러 불이익이 많았기에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다.
집이랑 가깝고 차비가 안 들어서 2년을 다녔지만 나일론 고무줄 같은 시간 활용으로 월급도 매월 금액이 달랐다. 어떤 달은 40만 원 정도 일 때도 있었다. 계속할 일은 아니다 싶어서 나는 그만두었고 다른 오후 돌봄 교사는 7년의 설움을 견딘 후 운 좋게도-이 말이 맞을 것이다- 무기 계약직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공무원시험에서 떨어졌고 지금은 아동 관련 복지서비스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 쪽 일은 많은 서류에 치이고 아동들과 지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다시 학교 돌봄 쪽 일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의 돌봄 교사 일을 다시 하고 싶었고, 나이 때문인지 경력부족인지 해마다 늘어나는 지원자로 높아진 경쟁률을 뚫기엔 역부족인 듯싶었다.
그래도 경력이 있는지라 계속 도전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돌봄 전담사는 아예 채용을 안 하고 오히려 늘봄 쪽 인력은 많이 늘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늘봄행정지원사를 48명이나 뽑는다는 공고가 나왔다. 말 그대로 행정 쪽 일을 하는 것이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경력자가 유리했다.
나는 행정 쪽 일보다는 돌봄 쪽 일을 하고 싶은데 늘봄교사는 학교수업도 병행할 수 있는 퇴직교원이 맞게 되니 나와 같이 아동 돌봄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그 기회도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비빌언덕이 사라진 지금.
나는 어떻게 각자도생해야 하는지 매일 생각한다.
사람의 일이란 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갈 궁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또 다른 희망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뜻하지 않은 때에 기회가 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