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이제 매너를 생각할 때(17)
지난 번 글에 이어 계속 호칭에 대하여 알아보자.
호칭은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순한 기능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기에 감정과 생명력이 있어서 대화 전체의 분위기와 품격을 좌우한다. 호칭은 말의 첫인상과 같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첫인상이 얼굴에서 좌우되듯 대화에 있어서의 첫인상은 호칭에서 결정된다. 적절하고 호감 가는 호칭을 사용하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잘못된 호칭을 사용하면 황당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적절한 호칭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호칭으로 인하여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다음의 호칭구사 요령을 잘 살펴서 확실하게 익혀두자.
호칭구사는 그 직장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다음에서 ○은 성씨를, ○○은 이름만을 나타내며 ○○○은 성과 이름을 가리킨다)
0. 직함이 없는 동료끼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씨’ 또는 상황에 따라 이름만으로 ‘○○씨’라 부르며, 직종에 따라서는 ‘○선생(님)’, ‘○○○선생(님)’으로 부른다.
0. 같은 직급이라도 나이가 많아 ‘○○○씨’라고 부르기 곤란할 때는 ‘○선배(님)’라고 할 수 있다.
0. 남자직원이 동료 남자직원을 ‘○형’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냥 ‘형’, 또는 이름을 붙여서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치게 사적인 인상을 주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0. 과장이나 부장 등, 직함이 있는 동료간에는 직함을 붙여서 ‘○과장’, ‘○부장’처럼 부른다.
0. 직함이 있는 상사를 부를 때는 직함에 ‘님’을 붙여서 ‘과장님’, ‘부장님’이라고 부른다. 직함자체가 존칭이므로 그 뒤에 ‘님’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잘못된 기준이다. 직함은 회사 내에서의 신분을 나타낼 뿐 그 자체가 존칭이 아니다. 따라서 ‘님’을 붙이는 것이 우리의 정서에 맞는 올바른 호칭이다.
0. 직함이 없는 선배 또는 연장자인 동료직원을 ‘○○○씨’로 부르기는 어렵다. 이 경우는 ‘님’을 붙여서 ‘선배님’, ‘선생님’ 또는 ‘○선배님’, ‘○선생님’이라 부른다.
0. 상사가 직함이 없는 아랫사람을 부를 때는 ‘○○○씨’를 쓰고, 아랫사람이라도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선생(님)’, ‘○○○선생(님)’으로 부르거나 선생(님)대신에 선배(님)를 붙여 부른다.
0. 상사가 부하직원을 부를 때 ‘○○야’나 ‘○씨’로 부르는 것은 좋지 않다. ‘씨’가 과거에는 존칭 접미사였지만 오늘날은 성만 사용하여 ‘○씨’라고 부르는 표현은 상대를 낮추는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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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중에서 가장 말썽 많은 호칭은 단연 ‘사모님’이다. 호칭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사람도 ‘사모님’에 대해서만은 일가견을 내세운다. ‘사모님’이란 본래 스승의 아내에게 사용하는 것인데 왜 아무에게나 그걸 불러 주냐고 시비를 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부질없는 논리요, 쓸데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내 친구 중에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는데 그 친구도 ‘사모님’ 호칭만 나오면 열을 올리고 게거품을 뿜는다. ‘사모님’을 일반 부인네들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현실적으로 부인네들을 높여서 불러야 할 경우에 어떤 호칭을 사용하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냥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가끔, 식자識者들 중에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이론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현실을 한번 생각해 보자. 3인칭의 호칭으로는 ‘부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지만 2인칭의 호칭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특히 상사의 부인이나 주부 고객을 지칭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부인! 어쩌고……”해 보라. 황당한 상황에 직면할지 모른다.
오늘날의 호칭 중에 본래의 어원과 말뜻대로 사용되는 것이 과연 몇이나 있는가. ‘선생’이란 호칭도 고려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한 선비에게 붙여주던 것이요, ‘마누라’도 조선시대에는 ‘마마’와 같은 경칭敬稱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쓰임새가 어떠한가를 생각한다면 구태여 ‘사모님’만 가지고 시비를 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사모님’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본래의 뜻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인의 높임 호칭으로 부르고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모든 말이 다 그렇듯이 호칭도 시대와 상황의 변천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만약, 상사의 부인이나 친숙한 중년 여성 고객을 만났다면 당당하게 ‘사모님’ 호칭을 사용해도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