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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관일 Nov 18. 2022

'스타일 리더십'이 답이다(1)

 '스타일 리더십'을 시작하면서

1. 스타일 리더십을 시작하면서


리더십이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0년쯤 됐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리더십론이 주장되었다. 어떤 리더십으로 리드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다. 

이제부터 나는 '스타일 리더십'론을 연재하려고 한다. 스타일 리더십이란 자기의 스타일, 리더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자는 주장이다. 스타일이란 체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타고난 기질, 성격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개성을 말한다.


스타일 리더십은 사람마다, 리더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그 스타일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자신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리더십은 팔로워를 섬기며 자기의 성질을 죽이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의 스타일을 살려야한다. 그래야 리더가 살며, 팔로워도 살고 조직도 산다.

만약 팔로워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많은 리더십론이 팔로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시적으로는 성공적인 리더십이 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리더십이 되기 쉽다. ‘자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일단 새로운 리더십론 - 스타일 리더십에 입문하면서 그동안의 리더십은 잊기를 권한다. 백지위에 새로운 리더십을 그려보자.       


■ 수많은 리더십이론. 답은 자신에게 있다


2016년 1월,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된 제47회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Annual Meeting)은 세상이 4차산업혁명(4th Industrial Revolution)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한마디로 인공지능(AI)과 로봇기술에 의하여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이라 했지만 산업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인간관계를 비롯한 우리의 삶 전반에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이듬해인 2017 다보스 포럼의 핵심의제가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 (Responsive and Responsible Leadership)’이었다는 점이다.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4차 산업혁명’과 유구한 역사를 가진 리더십의 매칭이 묘한 느낌을 준다. 세상이 제아무리 혁명적으로 변한다 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리더십은 국가나 조직 또는 집단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화두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을 수시로 듣고 접한다. 어쩌면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가장 빈도 높은 용어가 리더십일지 모른다. 그에 관한 책과 논문도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이글을 쓰면서 우리나라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의 홈페이지에서 ‘리더십’을 검색했더니 국내도서 2,863, 외국도서 13,106권이 검색되었다. 리더십과 연관된 도서가 무려 1만 6천권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다(지금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리더십 관련 서책에서 저자들은 나름의 리더십론을 펼칠 것이다. 저자의 시각과 생각에 따라 별별 리더십이 다 있다. 생각해낼 수 있는 리더십은 모두 있는 것 같다.      


■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     


이름난 리더의 고유명사를 수식어로 붙인 리더십도 있다. 예수 리더십, 공자 리더십, 칭기즈칸 리더십, 나폴레옹 리더십, 히딩크 리더십, 심지어 전두환 리더십까지. 또는 중요한 키워드를 수식어로 동원하여 이론을 펼친다. 변화 리더십, 슈퍼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 카리스마 리더십, 겸손 리더십, 실용 리더십. 여성 리더십, 글로벌 리더십, 통합 리더십, 진성 리더십, 원칙 리더십, 소통 리더십, 칼라 리더십, 펀 리더십, 엄마 리더십, 그리고 셀프 리더십까지.


스포츠계의 유명한 감독이 형님처럼 선수들을 잘 챙겨주며 리드한다고 해서 ‘형님 리더십’이라 했고, 2016년 리우올림픽 때에 정몽규 한국선수단장이 마치 옆집 아재처럼 소탈하고 친근하게 잘 이끌어준다고 ‘옆집아재 리더십’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그뿐이 아니다. 베트남 축구팀을 이끈 박항서 감독이 선수의 발을 마사지해주는 것을 보고는 ‘아버지 리더십’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무 말 리더십’이다. 아무 말이나 수식어로 붙이면 새로운 리더십이 탄생하니까 말이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론과 주장이 많다는 것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걸 뜻한다. 왜 해답을 못 찾고 계속해서 리더십에 대한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는가?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리더의 성격이나 기질이 제각각인데다가 조직의 성격과 분위기 또한 제각각이요, 그것을 둘러싼 상황과 여건 또한 무궁무진, 변화무쌍하다. 그러니 리더십의 유형 또한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단칼에 리더십을 결론지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따라서 어느 주장도 리더십을 설득력 있게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리더십이라는 이름의 블랙박스가 갖는 특성이요 한계다. 딱 하나의 답을 찾아 결론을 내리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리더십이란 사람과 상황과 여건이 어우러지는 복합함수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과 변수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십을 공부하고 갖추려는 사람은 수많은 리더십론에 자신을 맞추려하기보다 자신과 상황 그리고 여건에 맞는 리더십을 스스로 찾아 만들어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답은 리더 자신에게 있기에 자기 자신에게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내가 ‘스타일 리더십’을 주장하는 이유다. 거창하게 말하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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