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동물의 오랜 본성 중 하나로, 계급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적으로 만들어져 고착된 것일 수도 또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칼 세이건의 명저 '에덴의 용'에서는 R복합체라고 하는 뇌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 관습적이고 위계적인 측면을 담당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야 말로 동물이 오랜 진화를 거쳐왔음에도 기저에서 동작하는 그것이다. 즉, 계급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인 것이다.
늑대와 침팬지와 같은 사례를 차치하고라도 인간만 봐도, 원시시대부터 부락을 갖춘 이후, 계급은 사회를 동작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성경에서조차 언급되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도 계급이요, 중세시대의 왕, 공작, 백작도 계급이요,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과 노비도 계급이다. 같은 양반계급 안에서도 정치적인 영향에 따라 계급이 수없이 분화된다.
철학과 지성이 발달한 현대사회가 된 지금은 어떠할까?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평등과 공정이라는 명제를 만들어냈음에도,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있던 일이다.
그 아파트는 1000세대가 훨씬 넘는 큰 단지였고, 그 지역에서는 특이하게 25평 단일평형으로만 이루어진 아파트였다. 즉, 표면적으로는 대략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무리라고 볼 수 있는 아파트였다.
한 번은 택배트럭 때문에 아이가 위험했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다행히 사고는 안 났다), 그 이후 사건이 이상하게 번지면서 아파트 내에 탑차의 주차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탑차의 경우, 높이가 있어 지하주차장에 주차가 불가능해서, 일부 남아있는 지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었는데, 지상주차장에 화물차들 모두를 주차하지 못하게 하자는 의견으로 커져갔다.
최초의 명분은 위험요소의 제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파트 내 커뮤니티는 화물차가 지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으면, 아파트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는 의견이 나타나게 되었고 투표를 통해 결국 화물차의 지상주차장 주차가 금지되었다. 직업상 화물차를 운행해야 하는 분들은 졸지에 자신의 아파트임에도 자신의 차를 주차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셈이다.
동일 평형에 비슷한 경제적인 상황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그 안에서 직업의 계급을 만들어서 차별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지인이 사회복지 관련 일을 잠깐 하게 되면서 듣게 된 이야기로는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 사이에서도 등급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에서도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것은 익히 들은 이야기이고...
가까이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보면, 지역의 계급이니, 자동차계급이니, 시계브랜드 계급이니 열심히들 나누고 즐기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두들 평등과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진화를 거스르는 깊숙한 곳의 본성, 그중에서 위계라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아무리 성숙한다고 한들 결코 사라지지 않는 특징인가 보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물학적, 사회적 진화를 하게 되면, 더 평등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인격체가 되리라고 기대하겠지만, 예상치도 못한 것에서 계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사회가 되는 현실이 씁쓸함을 더 한다.
그 와중에 한 단계라도 계급렙업을 위해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도 씁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