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영 Mar 31. 2024

남의 편이라뇨?

일상과 사색

 우리 집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부부의 종교가 다르다. 그런고로, 아내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나는 불가지론자다.


 나는 본래 무교였는데, 유명한 천문학자 칼세이건이 불가지론자라고 하길래 개종했다. 뭐 별다를 건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번주 일요일은 부활절로, 종교가 기독교인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부활절 앞의 한주는 고난주간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기독교를 믿는 분들은 그 주간에 무엇인가 하나씩 본인에게 고난이라고 판단하는 것들을 지정해서 지키는 모양이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모임에서 이번에는 평소 즐겨 먹는 것을 일주일간 금식해보자고 했다는데, 아내는 이것을 금식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것은 빵 안 먹기!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좀 웃기지만 아무튼 지난 월요일부터 빵은 입에도 안 댄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바로 문제가 생겼다!


 월요일 퇴근 길에 통화하는데 아내는 상담할 것이 있다고 한다.

 그 고민을 들어본즉슨, 아내가 오랜만에 어떤 친구를 만난 모양인데, 아내의 결심을 알턱이 없는 친구는 그날 '상투과자'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 보기만 해도 달달한 맛이 상상되는 바로 그 백앙금과 계란노른자, 그리고 우유가 들어간 바로 그 과자다.


 아내의 고민은 '상투과자'가 과연 빵이냐, 과자냐였던 것이다. 고난주간 빵을 먹지 않기로 했으니, 빵이면 안 먹을 것이고 과자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난으로) 명쾌하게 대답해 줬다.


"과자라는 것은 바삭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부드러운 거니까 빵이지... 그러니까 먹으면 안돼."


 사실 상투과자의 다른 이름으로 밤빵도 있기는 하다. 그러니, 내 논리가 썩 틀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먹혔는지 아내는 이내 좌절을 하고는 부활절이 오기까지를 기다리며 상투과자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아! 물론 내가 먹을 몫은 놔두고 말이다. (나는 하루 한 개씩 꺼내 먹었다. 하! 하! 하!)

.

.

.


 그렇게 어렵사리 빵을 멀리하던 아내에게 고난의 며칠이 흘러갔고, 드디어 토요일 밤 9시 경이되었다!

 아내 소파에서 TV를 시청하는 동안 나는 냉장고에 있던 상투과자 하나를 꺼내 먹고있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아내가 기뻐하며 말한다.


"와~ 이제 3시간 후면 나도 상투과자를 먹을 수 있다~ 룰루랄라~"


 기뻐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을 건네줬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건 이스라엘에서였으니까, 이스라엘 시간으로 계산하면 아직 시간이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아... 또... 예수님이 0시에 맞춰 부활하신 건 아닐 테고 점심 즈음일 수도 있으니, 내일 저녁까지는 상투과자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


 이 소리를 들은 아내 왈,


"이러니 남의 편이지.... 쯧!"

작가의 이전글 우리 사랑 이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