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의 초반 부분에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 약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묻는 장면이 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육체가 갇힌 상태로 기계에게 전기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 인간들은 생명을 온전히 유지하도록 가상현실의 세계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모피어스라는 인물이 네오에게 제시한 약 중에서 빨간약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매개체이며, 파란약은 편안한 가상현실의 삶에 안주하도록 해주는 약으로 영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scene) 중 하나다.
이 장면을 현실의 우리에게 투영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빨간약과 파란약 중 어떤 것을 택할까?
다수의 사람들에게 현실의 삶은 치열한 경쟁과 생존의 연속이다. 그리고, 현재의 삶조차도 변화무쌍한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있기도 하다.
국내든 해외든 세상은 온갖 이슈로 시끄러운데, 그런 정치, 경제, 사회, 국제문제 등은 당장의 삶에 영향을 주지도 않을뿐더러, 알아봐 봐야 현재의 삶에 불만과 불안감만 생길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이슈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이런 화제를 다루는 대화라던가 뉴스채널은 외면하기 십상이다. 그리고는 가십거리, 예능, 드라마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 대중의 삶인 것 같다.그렇기에 환율이나, 연금개혁안보다, 어떤 파란 모자를 쓴 연예기획사 대표가 더 화제이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현재의 하루, 한 달, 일 년을 살기도 버거운데 한두 명이 노력한들 해결되지도 않을 것 같고, 굳이 고민거리를 늘일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 국제문제와 같은 내용은 대화의 소재로 삼기도 어려울뿐더러, 토론이나 대화를 나눌 사람도 많지 않고, 심지어는 미디어 매체에서조차 다루는 곳이 줄어드는 추이로 볼 때, 현실을 사는 이들에게 진실을 알게 해 주는 빨간약보다는 현재의 삶을 선택하는 파란 약을 고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영화 '매트릭스'로 돌아가보면, 영화 등장인물 중 기계에 대항하는 대항군 중 '사이퍼'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너무나도 힘든 싸움에 지쳤고, 결국 기계와 타협하여 스스로 캡슐에 갇혀 평안한 가상현실의 삶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매트릭스 중, 사이퍼의 선택
사이퍼라는 인물도 처음에는 진실을 알고자 빨간약을 선택했었겠지만, 그에 따른 현실의 자각과 쉽지 않은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이 녹록지는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내 생각에 사이퍼라는 인물은 다수의 일반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네오'라는 영웅이 나타나 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성공을 한다.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보다 복잡한 현실에서는 그런 영웅이 나타나기도 어려울뿐더러, 나타나더라도 만일 '당신이 가진 이익 또는 기득권을 일부 포기해야 합니다.'라는 사실을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