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요즘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을 할 때에는 소속된 사회에서 기본적인 혜택과 챙김을 받지 못하는 삶, 즉 경제적인 관점에서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말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삶을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아... 나는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어"라는 표현을 직장인이 한다면, 좋지 않은 노동환경이나 야근 에 따른 피로감 등을 말할 것이요, 도시의 빈촌에서 사는 사람이 말한다면, 복지의 사각지대이거나 대우받지 못하는 사회환경에 따른 소외감을 말할 것이다.
이것 모두 현시대에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고 싶다고 하는 것이 많은 부분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배금주의가 우선된 현시대에서는 그것이 곧 인간다운 삶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철학과 윤리학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삶을 찾아보니 철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정의와 견해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다운 삶의 본질을 '행복'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단순한 쾌락이 아닌, 덕을 통해 성취되는 삶의 완성으로 보았다고 한다.
칸트는 인간다운 삶을 도덕적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될 수 있는지 숙고하고, 이를 통해 도덕적 결정을 내릴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상)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최대한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개개인의 쾌락과 고통을 측정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유명한 니체는 초인(Übermensch)*의 개념을 정의하고 기존의 도덕과 가치체계를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을 제시했다.
*스스로의 정신을 단련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 Über는 넘어서는, mensch는 사람을 뜻한다.
당대의 철학자들은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인간다움 삶보다는 철학과 윤리적 관점에서의 인간다운 삶에 대해 정의했다고 할 수 있으며, 결국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바탕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지향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처럼 경제적인 부분이 받쳐줘야 윤리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반드시 경제적인 부분이 인간다운 삶의 지배적인 요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부분이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100억 자산가라고 한들, 1000억 자산가에 비하면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반대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즉, 현대사회에서의 인간다운 삶은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인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나, 꼭 경제적인 것을 갖추었다고 해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삶이 쪼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관점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뉴스나 신문에서 또는 넷상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말했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니체가 말한 초인이 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단지, 칸트가 이야기한 도적적 법칙에 따라 자신의 행동이 보편적인 행동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도덕적 결정을 실천하는 삶이 현시대에 필요한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에게 물적이든 정신적이든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삶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삶의 시작일 것이요, 나아가 타인을 배려하고 내가 양보하는 삶을 산다면 나와 함께 다른 사람들도 인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나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 된다면 그야말로 남들을 뛰어넘었으니 초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말이다.
덧붙임. 최근 좀 긴 글을 적느라 나름 보람된 시간을 보냈지만, 브런치에 소홀해져서 한 달 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글도 그나마 밤에 화장실 갔다가 문득 생각나 적게되어서 공백기 한달은 안넘겼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