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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May 04. 2023

네온테트라를 보내며

동물도 있수다

네온테트라 한 마리가 또 죽었다.

 네온테트라는 2~3센티가 안 되는 작은 물고기다.

어항에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저녁 구석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떠있는 녀석을 보았다.

 순간 아.. 또 죽었구나. 키우기 시작한 지 두 달여... 세 마리째다.

 핀셋으로 꼬리를 살짝 짚어 화장실로 간다. 변기 덮개를 열고 변기 속에 놓는다. 깨끗한 곳은 아니다만 별달리 둘 곳이 없기에 둔다.


 한참 후 일까 소변이 마려워 찾은 화장실, 덮개를  열어보니 그 녀석이 한켠에 누워있다.

소변을 보면서 본 네온테트라..

소변이 직접 닿지 않도록 하는 게 나름의 미안함이랄까, 예의랄까... 뭐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소변을 보다가 문득 2센티 정도의 네온테트라를 보면서 그 생명의 무게감이 참 가볍구나라고 느껴진다. 햄스터 라면 이렇게 보내지 않을 텐데, 고양이라면 이렇게 보내지 않을 텐데...


 문득 드는 생각에, 코끼리만하다면 무게감이 더 크게 느껴질까? 슬픔이 훨씬 커질까? 우주의 크기라면 그 존재의 죽음에서 무한한 경외감과 블랙홀보다 더 깊은 슬픔이 느껴질까? 미생물은 죽더라도 아예 느껴지지 않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크기에 따른 무게감과 슬픔은 시각이라는 감각에서 좌우되는 것일진대 시각에 따라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말할수있을까? 라는 질문에, 앞서 소변과 함께 보낸 네온테트라를 생각하면 그런 것 같다라고 스스로 답해본다.


만일 크기작더라도 나와의 관계성에 따라 그 무게감과 감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십수마리의 네온테트라에게 마음을 얼마나 주었던가... 키우는 고양이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는 그리 보내지 않았겠지.

 

 생명 자체가 소중하겠지만, 나는 무의식 중에 크기에 따라 그리고 관계성에 따라 대하는 감정이 달랐던 것 같다. 비단 이것은 인지상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런 감정의 달라짐이 나만의 근심은 아닐 거야' 라는 위안을 가져본다.


 작디작은 네온테트라야... 변기 속으로 보내서 미안하구나. 너무 원망하지는 말아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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