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하프 마라톤 완주의 여운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종아리 근육은 뭉쳐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밀려왔다. 장시간 움직임이 없다가 일어나 걸을 때면 더 큰 고통이 느껴졌다. 차라리 계속해서 걸으면 통증은 조금 줄어드는 듯했다. 많은 시간을 앉아서 업무를 봐야 하기에 계속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고통에는 달콤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마치 다리가 아플 때마다 하프 코스를 완주해 냈음을 알려주는 맛 좋은 열매처럼. 어쨌든 다리 상태를 고려하여 달리기는 며칠간 쉬기로 했다. 대신 집에서 근육통을 풀기 위해 더운물로 목욕을 하고 셀프 마사지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머릿속에는 상태가 호전되면 언제라도 달리기 위해 밖으로 나갈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하프 코스 완주로 자신감은 더욱 솟구쳤다. 완주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특별함 그 자체였다. 누군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내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해 냈다는 짜릿한 쾌감. 마라톤 하프 코스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개월 동안 꾸준히 연습한 결과라 그 만족도는 높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다. 특별한 보상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다.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나 자신의 내부에서 비롯된 자각이었다. 외적 동기보다 내적 동기가 더 강력한 몰입도를 만들어 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신 스마트폰을 걸고 자녀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려는 외적 동기가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다.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높은 성취로 귀결되는 것이 내적 동기다. 나의 달리기에 대한 열정도 바로 내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목표를 위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연히 더 큰 목표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달리기는 연습한 시간과 땀이 말해 준다. 땀을 흘린 만큼, 더 오랫동안 달린 만큼, 그리고 많은 시간을 연습한 만큼 강한 힘으로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달리기 경험을 통해 몸소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결코, 짧은 시간에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래서 마라톤 대회 참가를 좋은 연습의 기회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10km와 하프 코스에 참가하여 마니아들과 함께 달리며 기록에도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달리는 수준과 역량이 다양한 사람과 뛰다 보면 평소보다 속도가 더 빠를 뿐만 아니라 동기도 더 높아지는 법이다. 이로 인해 자신의 능력치를 넘는 과도한 달리기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간혹 생긴다. 따라서 대회 참가 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일이다.
나는 마라톤 코스 중에서 10km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2, 3번 정도는 10km 대회에 참가하고 그다음에 하프 코스를 달리는 것을 반복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나에게 10km 거리는 어렵지 않았다. 거의 매일 연습할 때도 10km는 쉽게 소화한 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풀코스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높은 연습이 요구된다. 지금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뛸 수 있는 심폐 지구력, 같은 속도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근력, 순간마다 변하는 신체 리듬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결국, 계획한 대로 실천으로 옮겨 달리기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2019년 11월 9일 진해 마라톤 대회 10km를 55분 22초에 뛰었고, 약 일주일 후인 11월 17일, 창원 통일 마라톤 대회 10km에서는 56분 52초에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그리고 3주 후에 참가한 대회에서는 하프 코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19년 12월 8일 진주 마라톤 하프 코스를 1시간 59분 5초에 들어온 것이다. 생애 첫 하프 코스 기록인 2시간 25분 58초와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땀은 헛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체계적인 연습이 유효한 것이다.
지금도 나의 달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과도하게 무리하지 않겠다고 다짐의 다짐을 하는 것이다. 마라톤은 절대 단기 속성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유를 갖고 꾸준히 달릴 때, 달리기 수준도 조금씩 성장하는 법이다. 또한, 나는 전문 마라토너가 아니다. 직장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에 대한 성취로 보람을 느끼고 싶고, 관련 전문성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 건강한 영향을 미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고 싶다. 여기서 달리기는 나의 총체적인 삶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적당한 소금으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 탄생하는 것처럼, 달리기는 다소 무기력해질 수 있는 삶에 맛과 건강을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