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하프 마라톤

by Serendipity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머릿속에는 달리기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부터 나는 달릴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어떤 코스로 달려볼까? 걷기와 달리기의 시간을 어떻게 나눠볼까? 날씨가 쌀쌀하니까 장갑을 준비해야겠다. 종아리 근육이 뭉쳐 있으니 준비 운동을 철저히 해야지. 이렇듯 달리기 의지를 상승시키기 위한 자기 강화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은 달리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다.

집에 도착하면 달리기 복장을 하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비 오는 날, 미세먼지가 좋지 않은 날, 그리고 몹시 추운 날은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 있는 러닝머신을 이용했다. 러닝머신은 체계적인 달리기 연습에 효과적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걸음으로 걷다가 시간이 갈수록 빠른 걸음으로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수준과 컨디션에 따라 달리기 속력과 강도를 유효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러닝머신에서의 달리기보다 밖에서 달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운동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헬스장 운동도 좋지만, 바람을 가로지르며 땅을 박차고 전진하는 밖에서의 달리기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거의 매일 달렸다. 가볍게 뛰면 40분, 오래 달리면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렸다. 다리에 힘도 붙기 시작했다. 허리를 휘감으며 두텁게 자리 잡았던 뱃살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꾸준히 실천하다 보니 달리기에 자신감도 생겼다. 자신감은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져, 마라톤 대회 참가 다짐도 굳게 만들었다. 앞으로 2, 3개월을 더 연습해서 하프 코스에 도전할 거라 나 자신과 약속했다. 인터넷으로 마라톤 대회 일정을 검색해 보았다. 4월 초에 열리는 ‘합천 벚꽃 마라톤 대회’가 눈에 들어왔다. 내 근무지가 있는 곳. 마침 연습할 수 있는 기간도 3개월이 남았다. 여유를 갖고 체계적으로 연습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달리기에 대한 동기는 더 높아졌다.

절대로 무리해서 달리지 않기로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나서는 의욕과 욕심이 앞서 오버 페이스 하는 경우가 많았다. 힘이 남는다고 더 많은 시간을 달리면, 다음날 피로도가 가중된다는 것을 이미 학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달리기 기분에 취하여 현재의 짜릿한 순간에 젖어버렸다. 평소보다 더 달릴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어도 적당한 선에서 조절해야만 했다. 희한하게도 이러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니 나만의 패턴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평일에는 정해진 시간만 달렸다. 한 시간을 넘지 않았다. 대신 주말에는 다음 날 자유로운 일상이 보장되어 있다는 평온함 때문에 평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달렸다. 다음날 피로를 달랠 수 있는 정신적 여유로움도 한몫했다. 마라톤 대회가 임박해서는 실전 연습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프 코스의 정확한 거리는 21.0975km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의 반이다.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마라톤 대회 당일 뛰어보지 못한 먼 거리를 달리는 생소함을 떨쳐버리기 위한 적응이 필요했다.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오랜 시간 동안 뛰게 되면 힘들기 때문이다.

대회 당일, 마음이 몹시 흥분되었다. 3개월간, 충분히 연습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완주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다’라고 되뇌며 스스로 격려하는 최면을 걸었다. 대회장에는 달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넘쳐났다. 마라톤 마니아가 이렇게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모두 달리기 복장으로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공이 상당해 보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위축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풀코스 참가 선수들이 먼저 달리고, 두 번째 하프 코스 차례가 왔다. 드디어 많은 무리 속에 자리를 잡고 출발선에 섰다. 마치 아프리카물소 떼가 저돌적으로 달려 나가듯이 출발 신호와 함께 사람들은 앞을 향해 힘껏 나아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랐다.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많이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나는 페이스를 유지하자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며 달렸지만 소용없었다. 10분쯤 달리자 속도가 느려졌다. 그런데 내 뒤에 뒤따라 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명인지 셀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셀 수가 없었다. 50대 중반의 아줌마가 나를 추월했고, 이제 갓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나를 앞질러 나갔다. 심지어 백발의 할아버지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미를 자랑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우며 계속 달렸다. 정말 힘들었다. 결국, 17km 지점에서 달리기는 걷기로 바뀌고 말았다. 걷다가 달리고, 달리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꼭 완주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강한 의지가 작용했는지, 나는 결국 완주에 성공했다. 2시간 25분 58초.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생애 첫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여 끝까지 완주한 데 의의를 두었다. 엄청 힘들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대견함이 밀려왔다.

흔히, 인생은 마라톤에 비유된다. 달려보니 알 것 같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 순간의 고통을 인내하면 언젠가는 편안한 안식이 꿈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숨이 넘어가는 고통,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정도의 다리 통증, 그리고 나약한 나와 싸우는 갈등을 통해 더욱 단단한 나와 마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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