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입은 굳게 다물고 눈에는 화가 잔뜩 묻어 있었다. 뚜벅뚜벅 자기 자리로 걸어가더니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뭔가 언짢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길수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아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얼굴 표정이 된다. 나는 길수에게 일부러 더 반가운 인사를 건네 보았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얼굴은 더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길수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길수야! 무슨 일이 있었구나!”
“......”
“괜찮아, 선생님한테 말해봐. 응?”
“아빠한테 맞았어요.”
“그래서 길수 마음이 아프구나.”
“나중에 크면 복수할 거에요.”
길수는 마지막 말과 함께 참았던 서러움을 쏟아내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두 주먹은 불끈 쥐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때릴 것만 같았다. 나는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한 참 지나서야 길수의 마음도 진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다.
길수 아빠는 술을 자주 마신다고 한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자주 때린다는 것이다. 때리는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컴퓨터 게임 때문에, 방이 지저분하기 때문에, 형과 다투었기 때문에,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기 때문에 아빠한테 맞았다고 했다. 마치 때리기 위한 빌미를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 날 아침, 길수가 맞은 이유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빠가 때리면 할머니와 엄마가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빠가 워낙 강하고 일방적이어서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정 폭력은 대물림된다. 할아버지가 아빠를 때리면 아빠도 아들을 때린다. 맞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때릴 가능성이 크다. 아마 길수 아빠도 가정에서 누군가로부터 맞으면서 자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일상 경험을 오감으로 받아들인다. 몸소 체험하는 경험은 하나하나가 학습의 순간이다. 이러한 학습이 누적되면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갖고 살게 될 내가 만들어지는 곳이 가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나는 맞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내 자식들을 절대 때리지 않을 거야!’라는 말이 실현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아이들은 들은 대로 말한다. 그리고 본 대로 행동한다. 일상의 대부분을 함께 생활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말투, 억양, 행동, 자주 사용하는 단어, 심지어 버릇과 습관까지 신기할 정도로 아이들은 부모를 닮는다. 부모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올바른 부모 역할은 ‘부모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 부모 교육을 통해 엄마, 아빠도 아이와 함께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가정 폭력 대물림의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폭력이 수반될 경우 아이에게 미치는 심리적, 정서적 영향 등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가 나서야 한다. 사회가 부모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 나아가 제도화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특별 교육뿐만 아니라 좋은 부모로 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 과거의 한 시점에서 부모로서 다소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하는 순간일 것이다.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한숨의 크기와 횟수를 줄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의 역할이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그러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길은 있다. 부모 교육이 그 길을 열어 준다. 여럿이 함께 걸어갈 때, 길은 더욱 넓고 탄탄해진다. 나중에 크면 아빠에게 복수한다는 가슴 아픈 말이 다시는 들리지 않도록 체계적인 부모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