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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배짱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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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호 Sep 17. 2023

배짱

3. 면접

'요즘 40~50대 부부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네? 이혼율이 높아지는 원인이요?'


박 선배와의 만남 이후 종합상사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였고 형식적일 것이라고 했던 영어 시험을 입사 1차 관문으로 보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자고 다짐했음에도 그래고 시험이라 그랬는지 수험장에 들어서니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맴돌았고 나도 덩달아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박 선배가 요식행위 중 하나일 것이라던 영어 시험 결과 우리과 지원생 12명 중 나를 포함 3명만 합격하였으니 요식행위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대학 4년 기간 동안 붙잡고 있었던 공인회계사 1차 시험에 영어 과목이 있었고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영어 역시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를 해 온 덕분이었는지 입사 시험에 합격을 하였는데,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대학 4년을 허송세월만 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1차 관문을 통과한 우리과 3명 포함 주요 대학 출신 약 20여 명이 2차 관문인 면접을 보게 되었고 임원 4명과 마주한 내게 면접관 중 한 분이 나에게 던진  첫 면접 질문이었다.

  

입사 면접이라고는 머리털나고 처음이라, 면접일 전까지 내 나름 예상 질문을 정리해 보고 친한 선배, 친구들에게도 예상 질문에 대해 자문을 구한 결과 중론은 1. 전공인 경영학 관련된 질문, 2. 종합상사에 대한 이해도, 3. 입사 시의 포부 정도였고 이 질문들에 대해 나름 준비를 해서 면접에 임했는데 뜬금없이 이혼율이 높아지는 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냔다. 그것도 내 나이,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40~50대 부부라니?


질문을 듣는 순간 혹시 이 분이 내게 농담을 하시는건가 해서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는데 꽤나 진지한 얼굴로 나를 보고 계신다. 농담하시는 건 아닌게 분명한데 그렇다면 합격시켜 줄 생각은 없고 그냥 젊은 놈, 골탕이나 메기고 불합격시키려고 그러시나?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스럽고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때까지도 내 근자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설령 이 면접에 불합격되더라도 또 다른 기회가 널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나름 차분하게 답변할 수 있었다.


'음.. 질문하신 40~50대 부부의 이혼율에 대해, 우선은 제가 아직은 살아보지 못한 연령대이고 결혼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대부분의 결혼한 40~50대 부부가 결혼 초기에는 현재보다 훨씬 가난했을 것이고 그렇다보니 눈높이 역시 상대적으로 낮아서 배우자를 고를 때 적용했던 기준도 높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40~50대가 되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일정 부분 성취를 하였을 것이고 눈높이 역시 높아졌는데 반해 배우자는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보다도 외모가 망가졌을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망가진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젊고 이쁜 여자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욕망에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고 그로 인해서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임원분의 이혼율 상승과 관련된 질문은 이어졌고 나는 나름의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성실하게 답변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어느 순간 내 상상력이 바닥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다행이 또 다른 면접관분이 흑기사 역할을 해 주시면서 화제를 바꿔주셨다.


약 30여 분의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진흙밭을 걷는 듯한 무거움이 교차하는 미묘한 상황이었다. 떨어진걸까? 가정법원의 이혼법정도 아닌데 뜬금없이 이혼율이 높아지는게 나와 무슨 상관이고 종합상사 근무에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귀중한 면접시간에 그런 질문을 했을까?


면접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이미 던져진 주사위이고 내가 뭘 어떻게 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기로 했다.


'그 면접관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본인이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인가?'


면접일의 일은 잊고 생업에 종사하자고 마음을 몇 번이고 고쳐먹어도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로 마음은 번잡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시간은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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