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까지 예정되었던 영어와 일본어 연수 기간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덧 공채 합격생들이 확정되었다. 최종적으로 입사 동기는 총 63명이 되었고 1월 초부터 무역 실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신입사원 연수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강사진은 회사 내에서 잔뼈가 굵은 과, 부장급 선배들이었고 국제 금융, 무역 실무, 해외 현지에 대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대학에서 전공 공부를 할 때에는 현실감이 많이 떨어져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는데 회사 선배들이 실무 Case 를 바탕으로 설명해 주는 교육은 나름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회사가 해외 거래선을 상대로 돈을 버는 기법에 대한 교육이라는 생각은 나른해지는 오후의 피로도 떨쳐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강사로 선임된 선배들은 나름 각자의 부서에서 인정을 받는 직원들이었고 강사 경력 또한 많아서 우리 동기생들이 호응도가 떨어지거나 나태해지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해외에서의 무용담을 적절히 섞어서 호기심을 이끌어 내곤하였다.
신입사원 교육 과정을 하루하루 거치면서, 내가 입사 후에도 계속 잊지 못하고 가끔씩은 이유가 궁금했던 면접 때 받았던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실마리 역시 찾을 수 있었다. 미국 유학 도중 창업자였던 형님의 부고 소식에 졸지에 그룹 경영을 떠맞게 되었던 선대 회장님은 직접 그룹사 직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정리해서 신입사원 연수의 한 과정으로 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중요한 다섯가지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가정관리' 였던 것이다.
'무슨 초등학생 교육장도 아니고 가정관리까지 어떻게 하라고 하냐?'
함께 교육을 받던 동기생 중 한명이 쉬는 시간에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으니
'회장님 본인이 우리가 교육받는 여러가지 덕목에 대해 확고부동한 생각을 갖고 계신다니 할말 없는거지 뭐.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우리 회사에서 임원 달고 싶으면 이혼 경력이 있으면 안된단다.'
동기생들 중에서는 비교적 회사 내부의 소식에 정통했던 원준이의 이런 설명을 들으니 내가 갖고 있던 면접에 대한 수수께끼가 한순간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면접 당시에는 도대체 왜 내 전공이나 회사 업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것도 40~50대 부부의 이혼율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했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가정관리라는 덕목을 교육받고 나니 결혼과 가정에 대한 내 가치관을 확인해 보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선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이혼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내 태도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절묘하게 회사의 가정관리 덕목과 맞아 떨어졌고 그 연유로 면접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S 그룹 종합상사 근무 이후에 몇차례 이직의 경험이 있지만 그 때마다 느낀 것은 인연은 사람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회사 간에도 존재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약 5개월의 시간을 실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이 회삿돈으로 어학연수, 사내교육을 받았고 월급까지 꼬박꼬박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 친구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가 친구이고 사회에서 만난 직장 동료는 입사 동기 포함 그냥 동료일 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우리 동기생들은 길게는 9개월(특채생들), 짧게는 5개월을 같은 반 친구처럼 웃고 떠들며 동고동락하다 보니 학교에서 만난 친구 이상으로 관계가 돈독해 질수 있었고 그 덕분에 동기생 서로에게 신입사원 시절의 어려움을 비교적 수월하게 넘길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수도 있는 신입사원 연수 과정은 어느덧 클라이막스로 달려가고 있었다.
'과정 초기에 안내해 드렸던 해외패기훈련이 5월 중순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회사에서 정한 국가와 코스 중 택 1 하여 팀을 구성하고 현지 국가에서 어떤 미션을 수행할지에 대한 계획서를 다음 주말까지 제출하세요.'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해외패기훈련에 대한 안내가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정한 코스는 미국, 유럽, 동남아, 호주 등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고 각 팀은 4명 내외로 구성해서 현지에서 시장조사를 하는 미션이었다. 물론 일정 중에 현지 지사를 방문해서 지사장과 주재원들과의 만남의 시간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코스로 갈지 결정했어?'
동기생들 중 유독 친하게 지냈던 승호 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 동기생 63명 중에는 다른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거나 입사가 늦었거나 등등의 이유로 일반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은 형들도 있었고 군대 면제로 인해 두어살 적게 일찍 입사한 동기생도 있었다. 대부분 허물없이 각자의 나이나 학번에 관계없이 편하게 호칭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내 출신 학교에서도 그랬듯이 두어살 많은 동기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사석에서는 호칭을 형이라고 했다.
'아니, 아직이요. 형은?'
'글쎄, 나도 아직 결정은 못했어.'
'동남아 코스는 3개국을 가는 것으로 되어 있던데 그쪽으로 가볼까요?'
'그것도 좋지'
'그럼, 동남아 3개국 중 어느 나라 코스로 갈지 내일까지 결정해서 같이 가시죠. ㅎㅎ'
'그러자.'
동기생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지만 나는 종합상사 입사를 통해 내 사업의 기반을 마련할 생각을 품고 있었고 미국이나 유럼처럼 선진국 보다는 개발도상국인 동남아에서의 사업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동남아 코스를 가고 싶었다.
승호형과 다른 두 명의 동기생들과 의기투합해서 우리가 정한 해외패기훈련 코스는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인도네시아(자카르타), 싱가폴 3개 국으로 정했고 각 국가의 시장 조사 계획을 포함한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5월 11일, 드디어 대망의 출국일 우리 동기생들은 팀 단위로 김포공항에서 각 팀의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승객 여러분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까지 모시고 갈 대한항공 OO 편 기장 김 OO입니다. 오늘 쿠알라룸푸르까지의 기상은 대체로 맑을 것으로 예보되었고 ……’
대부분의 동기생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도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출국하는 걸음이어서 그랬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는 마음과 괜스레 성공한 듯한 기분에 취해서 있지도 않은 철천지원수를 만나더라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그야말로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 너그러운 마음에 취해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니 비행기가 구름 위를 미끄러지듯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