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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배짱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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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호 Sep 18. 2023

배짱

4. 합격 그리고 어학 연수

안되도 그만이라고 시작한 입사지원이었고 면접의 주제가 매우 뜬금없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름 설득력 있고 조리있게, 그것도 사회에서는 이미 난다긴다 자타가 공인하는 임원 4명과의 면접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해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내심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발표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가슴을 조리게 되는 것은 사회새내기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런것이었나 보다. 물론 천성이 느긋한 편이고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가 틈날때마다 나를 '아전인수'의 대가라고 칭할 만큼 어떤 결과에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고 각각의 결과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성격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드디어 결과 발표일, 회사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다.


'박영진씨, S 그룹 종합상사 인사과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우선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아직 졸업 전이시지요? 4학년 2학기만 남겨 둔 것으로 말씀하셨는데 학기 중에는 별도의 연수 과정은 없고 서강대학교 어학원에서 영어 연수를 받으시고 종로에 있는 시사어학원에서는 일본어만 수강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내년 1월 정식 연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소정의 생활비가 지급될 것입니다.'


'아, 네. 이렇게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기 시작 전에 한 번 회사에 나와서 입사 관련 서류에 서명하고 어학연수와 관련된 일정 등 구체적인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언제가 편하신가요?'


'네, 다음주에는 언제든 좋습니다.'


'그럼 다음주 화요일 오전 10시까지 회사 9층 인사과로 오셔서 저, 김대리를 찾으시면 됩니다. 특별한 준비물은 없고 신분증만 가져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연락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합격되리라는 기대를 내심 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모를 일이라 떨어질 수도 있다라며 마음을 졸였었는데 다행이 합격 소식을 접하고 보니 대학 합격 때와는 또다른 종류의 기쁨과 뿌듯함에 몇일을 들떠서 지냈다. 당시 병상에 계시던 선친께서도 이제는 고생이 끝났구나 하면서 기뻐하셨다.


인사과 김대리님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회사에 가보니 나 말고도 네 명의 입사 동기생들이 와 있었다.


'이번에 특채로 입사하게 된 인원은 여러분 포함 총 12명입니다. 9월부터 12월까지는 영어와 일본어 연수를 집중적으로 받으셔야 하고 연말에 공채 합격자들이 추가로 확정되면 정식 신입사원 연수는 내년 1월 초부터 약 5개월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신입 사원 연수의 기본 목적은, 우리 회사는 종합상사이고 해외 여러 국가의 다양한 거래선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사맨이라면 영어, 일어, 중국어 등의 어학 실력을 갖춰야 하고 해외 무역에 대한 종합적인 교육 이외에도 해외 거래선을 세련되게 리드할 수 있도록 식사 예절, 전화 수신 예절 등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 들으신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회사 신입사원 연수의 백미는 단연코 연수 일정 말미에 계획되어 있는 해외 패기 훈련입니다. 해외 패기 훈련은 평균 4명 정도로 팀을 만들어서 동남아, 미주, 유럽 등지의 국가 및 방문 도시를 선택하고 해당 국가에서 약 9박 10일 일정 동안 수행할 주제를 정해서 조사 활동 후 귀국해서 활동 보고서를 제출 및 발표하는 것 입니다.'


'우와, 해외 패기 훈련이 가장 매력적이네요. ㅎㅎㅎ'


입사 동기생들은 김대리님이 소개해 준, 생각지도 못한 해외 일정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벌써부터 어느 국가로 갈지 머리를 굴리는 듯 보였다.


당시만 해도 해외 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여행, 출장 등 출국 예정인 모든 사람은 남산에 가서 반공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물론 주변에 해외를 다녀 온 사람이 매우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일정에 해외 시장 조사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니....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지도 모르겠다.


9월부터는 지정된 어학 기관에서 영어와 일본어 연수를 시작하였는데 부모님 돈으로 공부하던 때와는 달리 회사돈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그닥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 돈으로 공부할 때에는 한 번도 긴장한 적이 없었는데, 회사돈으로 공부를 하려니 그 누구도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결국에는 성적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중압감에 휩싸여 매 순간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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