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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배짱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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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호 Sep 19. 2023

배짱

6.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싱가폴

'오우, 이 스멜은 무엇?'


'이야~ 누가 동남아 국가 아니랄까봐 공기가 훅하네.'


'그러게 공항 안에서는 에어컨 덕에 몰랐는데 바깥 공기는 만만치 않구만..'


한국의 5월하면 자연스럽게 싱그러운 공기와 쾌청한 날씨, 푸릇푸릇한 신록을 떠올리게 되지만 같은 5월의 쿠알라룸푸르는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가 그러하듯이 습하고 찐득이는 공기로 우리를 반겼고 그로인해 고작 몇 시간의 비행으로 이동한 장소여서 외국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는데 그런 우리를 일깨우듣이 여기가 이국이라는 점을 묵묵히 강조하고 있는 듯 했다.


해외패기훈련의 1차 목적은 대부분 해외에 나가 본 경험이 전혀없는 한국 촌놈들을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및 동남아시아 등 각자 관심이 있는 국가에 보내서 현지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비행기 예약, 공항 체크인, 출국 심사, 탑승, 입국 심사, 호텔 체크인, 체크 아웃 및 거래선과의 미팅 Arrange, 미팅, 결과 정리 등의 전반적인 과정을 익히게 해서 추후에는 독자적으로 해외 출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팀 단위로 정하도록 한 각 팀의 현지 조사 주제 역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코트라 현지 공관과의 협업, 지사원들과의 협업 등에 대한 경험을 쌓토록 하는 것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어서 과정 끝에 제출하기로 한 결과물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패기훈련이 동기생 간에는 장기간에 걸친 신입사원 연수를 이수한 것에 대한 호화로운 포상휴가 쯤으로 인식되었고 형식적인 시장조사 활동 이외에는 대부분 해당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으로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김 대리, 이 친구들이 이번 신입사원들이야?'


'네, 과장님. 안녕하셨어요?'


'그래. 자, 다들 오느라 고생했다. 나는 쿠알라룸푸르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OO 과장이야.'


'안녕하십니까?'


'차에 짐들 싣고 타. 우선 호텔로 가서 체크인하자.'


공항을 빠져 나와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오신 현지 주재원 과장님과 함께 예약된 호텔로 이동했다. 신입사원 연수 기간 중 그룹 전체 신입사원 집체 교육 때 그룹 소유 호텔에 투숙한 적은 있었지만 호텔에 투숙객으로 그것도 해외에서 머무는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된 방에 들어서니 깔끔하게 청소된 방과 정갈하게 정리된 침구 등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었고 이런 기분 좋음은 고등학교 때부터 곤두박질 치고 있던 가세 때문에 언제부턴가 항상 내 마음 한켠을 무겁게 짖누르던 우울한 감정도 한방에 싹 날려버리고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게 하였다.


평소 해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내게 9박 10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고 그래서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경험하고 보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동기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고 그래서 호텔 조식을 마치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외출 준비를 하고 호텔 로비로 약속이나 한듯이 모여들었다.


'오늘은 어디로 갈꺼야?'


'오전에는 근처에 있는 모스크에 가 보고 오후에는 제일 큰 쇼핑몰에 가 보면 아떨까?'


그나마 조금 덜 더운 오전 시간에는 외부 활동을 하고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오후에는 에어컨이 있는 쇼핑몰을 가기로 하고 팀원들과 함께 이동했다.


'어, 여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데.'


'아, 그래? 그럼 나는 안들어갈래.'


'그래, 나도.'


결국 우리가 방문한 모스크는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난생 처음인 해외여행 대상국이 된 말레이시아에 대한 내 인상은 시민들은 매우 친절하고 물가도 한국 대비 2/3 정도 수준으로 저렴했으며 음식 역시 한국인의 입맛에 썩 잘 맞았다. 물론 20대 중반의 혈기 왕성한 젊은나이였기에 돌도 씹어 먹을 만큼 식욕이 폭발하고 있었는데 그 어떤 음식인들 입에 맞지 않을까?


오전에는 여유있게 모스크를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던 우리 일행은 갑작스럽게 모스크 일정이 축소되는 바람에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조금 남게 되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어차피 해외패기훈련은 일종의 모험이라는 생각에 문득 이발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승호 형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숙소 인근의 이발소를 찾아서 이발을 하기로 했다.


'옆, 뒷머리를 짧게 잘라주세요.'


'네에~~.'


이발사가 시원하게 대답은 하였지만 말레이시아 원주민처럼 보였던 그 아저씨는 영어 소통이 원활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평소에도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닐뿐더러 헤어스타일 자체가 내 모습을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도 이발사에게 하는 내 유일한 요구사항은


'옆, 뒷머리를 짧게 잘라주세요'


이고 대체적으로 결과물이 무난했었다.


제버릇 남 못준다고 했던가 해외라는 생각을 잠시 잊은 듯 나는 똑같은 요구사항을 말했고 이발사는 자신있는 손짓으로 내 머리칼을 요리했다.


'어, 이게 뭐야. 자네 큰일 낫네!!'


'어, 왜 그래 형?'


승호형의 외침에 놀라서 앞에 있는 거울을 들여다 보니 거울속에 있어야 할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호식이가 내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 TV 드라마에 등장했던 호식이라는 남자의 머리 스타일은 마치 냉면 사발을 머리에 씌우고 사발의 라인을 기준으로 머리를 밀어버리는 우수꽝스러운 것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피하는 머리 형태였다.  


'앗, 어쩌지...'


낭패였다. 한국에서는 똑같은 주문을 수없이 했어도 오늘같이 참담한 결과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더욱이 지금은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 싱가폴 지사의 주재원 선배님들은 물론 지사장님들과도 약속이 잡혀 있는데 이런 머리꼴로 나타나면 사람이 너무 경솔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태산처럼 다가왔다.  


'어떡하지? ㅎㅎㅎ'


'그러게요. 난감하긴 한데 나름 재밌네요. ㅎㅎㅎ'


내 천성이 비교적 낙관적이라 그런지 잠깐동안 말려왔던 난감한 마음이 금새 풀리고 별 문제야 있겠나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호식이 머리를 하고 나머지 일행을 만나니 만나는 시람마다 한마디씩 인사를 건넨다.


'괜찮은거지? ㅎㅎㅎ'


'물론이지. ㅎㅎㅎ'


오후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을 먹은 뒤 말똥말똥한 눈으로 몇 명의 동기들이 호텔 로비에 다시 모였다.


'쿠알라룸푸르의 밤 문화도 경험을 해 봐야겠지?'


'그래야겠지.'


신체 건강한 젊은이들이니 밤 문화, 그것도 이국의 밤 문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텔 벨보이에게 주변에 가장 유명한 나이트클럽을 물어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려보니 예상처럼 휘황찬란한 불빛은 간데 없고 황폐한 주차장과 저기 멀리 조명이 흐릿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맞는건가?'


'망했나? 어, 저기 주차장 중간에 누워있는 것들은 뭐지?'


'어디 보자. 저게 뭐야.. 주창장에 누워있는 개들이 한두마리가 아니네...'


이전에는 유명한 나이트클럽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벨보이도 모르게 망한건지 우리가 기대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나온 발걸음이 아까워서 우리는 택시 기사에게 물어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택시기사가 안내해 준 곳은 역시나 우리가 예상했던 휘황찬란한 불빛과 고막을 찢을 듯 울려대는 팝송으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호기롭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니 희미한 조명 아래 말레이시아의 젊은 남녀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이국인만큼 그래도 무언가 한국의 밤 문화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컷던 탓이었을까. 한국의 밤 문화와 그닥 차이를 못 느꼈고 단지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클럽 안에서 본 여성들이 대부분 남자 평균의 키를 넘을만큼 훤칠하다는 점과 어두운 조명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미인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자, 오늘은 맥주 한잔씩만 하고 숙소로 돌아가고 내일 다른 동기들과 한 번 다시 오자.'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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