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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배짱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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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호 Sep 20. 2023

배짱

7.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싱가폴 II

'오늘이 쿠알라룸푸르 일정 마직막이니 저녁 식사하고 어제 갔던 클럽에 다녀옵시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기생 중 누군가가 이렇게 제안했다. 어제 저녁 클럽에 다녀왔던 동기생들에게 클럽에 기대 이상으로 늘씬한 미녀들이 많더라는 소식들은 이미 다들 전해 들었던 상태여서 그랬는지 누구하나 반대하는 사람없이 인사과의 인솔자 포함 총 9명의 일행 전원은 호기롭게 호텔문을 나섰다.


인원 초과로 택시 3대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왠지 편치 않은 마음에 승호형과 상수가 탄 택시가 출발하려고 할 때,


'형, 여기 기사들과 영어 소통이 원활치 않은 경우가 가끔 있다니 혹시 클럽을 못찾아 오겠으면 오늘 낮에 갔던 쇼핑몰 앞에서 만나시죠. 지금부터 30분 이내에 클럽에 도착하지 않으면 내가 쇼핑몰 앞으로 가서 기다릴께요.


'오케이. 별일이야 있겠어. ㅎㅎㅎ'


그렇게 3대의 택시는 클럽을 향해 출발했고 아니나 다를까 승호형과 상수 두 사람이 탄 택시는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직감이 들어서 나는 다음 약속 장소인 쇼핑몰 앞으로 이동했다. 쇼핑몰 앞에 도착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시간이 늦어서인지 낮시간의 풍경과는 달리 황량한 분위기였다. 그나저나 승호형과 상수는 거기에도 없었다.


'어떻게 된거지? 길이 엇갈린건가? 여기로도 안오면 어떻게 해야하나?'


호텔을 출발한지 시간이 제법 흘렀기 때문에 당연히 쇼핑몰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두 사람이 안보이자 순식간에 오만가지 불길한 생각이 내 머리에 꽉찼다.


이미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두 사람이 여기로 왔을 때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나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딱히 연락할 방법도 없었던터라 서성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휩싸인채 10분 정도쯤 흘렀을 때 갑자기 택시 한대가 쇼핑몰 앞에서 급정거 했다.


어두운 가로등 밑에서 내리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내 일행이었고 반갑고 다행스러운 마음에 한걸음에 택시까지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두 사람은 매우 격앙된 어조로 조리있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이고, 저 택시 기사 개OO 가 우리를 납치하려고 했어!'


'납치?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립니까?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했는데 알겠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어디 뒷골목 같은 곳으로 한참을 차를 몰고 가더라고. 그러더니 어느 막다른 골목에 도착했는데 양 옆에 있는 큰 철문이 동시에 열리더니 덩어리 4명이 나오더라고. 그 순간에는 이러다 죽는건가 싶었지. 그래서 약속이나 한듯이 나하고 상수하고 택시 뒷자석의 문을 잠그고 택시 기사 목을 조르면서 돌아가 달라고 애원했지.... ㅠㅠㅠ'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납치 미수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외국 청년 두사람이 늦은 시간에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니 택시 기사 나름으로는 홍등가를 찾는 사람들로 오해를 해서 그런 장소로차를 몰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무튼 별탈없이 돌아왔으니 다행입니다. 일행들이 기다릴테니 어서 갑시다.'


무사히 클럽에 도착해서 들어가니 무대 위에는 어제와 비슷한 수준의 훤칠한 미녀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 일행들이 그다지 멋스럽지 못한 몸뚱이를 흔들고 있었다.


나와 함께 늦게 도착한 승호형과 상수도 우리 자리에 자깐 앉아서 맥주를 한모금 들이켜고는 바로 무대로 향했다. 리듬에 맞춰 나도 내 몸뚱아리를 흔들다가 유심히 보니 장국이 형만 홀로 우리 테이블에서 무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장국이 형은 Y대 82학번으로 우리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많은 몇몇 동기 중 하나였고 다른 기업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는 등 자칭 사회 경험이 풍부하다고 주장해 왔고 더욱이 시도때도 없이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좋아해 나와는 어느 정도 코드가 잘 맞는 형이었다.


혼자 앉아 있을 캐릭터가 아닌데 저러고 있는게 신경쓰여서 나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형, 왜 갑자기 멜랑꼬리 하게 혼자 앉아 있는겨? 오늘이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마지막 밤인데 나가서 신나게 놀고 갑시다. ㅎㅎㅎ'


'아니, 나는 여기 앉아 있을께.'


평소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어조로 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이상해서,


'왜, 뭔일이 있어요?'


'뭔일은 아니고 저기 무대에 있는 사람들 잘봐바. 이층에서 내려보는 사람들도. 다들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순간 소름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장국이 형의 말을 듣고 유심히 살펴보니 어딘가 다른 것이 딱 남자들의 자태였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동성애자가 흔하지도 않았고 그런 연유로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광경이었기 때문에 동기들과 어서 이 곳을 벗어나는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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