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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배짱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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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호 Sep 21. 2023

배짱

8.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싱가폴 III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쿠알라룸푸르와는 또다른 느낌의 도시였다. 쿠알라룸푸르는 길거리에서 보이는 화교의 비중이 비교적 높았던데 반해 자카르타는 대부분 토종 인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경제수준도 말레이시아보다는 빈국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어어, 저사람 왜 칼을 들고 우리를 쫒아오지?'


호텔에 짐을 풀고 자카르타 지사장님과의 만찬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우리는 자카르타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 길이었다. 그런데 호텔 정원을 지나 큰길가로 나오니 어떤 현지인이 이순신 장군님께서 옆에 차고 계셨을 법 한 긴칼을 들고 우리에게 바짝다가오고 있는게 아닌가?


'누구야, 칼 맞을짓을 한 사람이?'


입으로는 동기생들에게 농담을 건넸지만 어마무시한 진짜 칼을 거머쥐고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긴장감은 늦출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한의 건아들답게 방어자세를 취한채 그 사람을 경계했는데,


'이 칼 사세요!'


'뭐래?'


'칼 사래. ㅎㅎㅎ'


약간은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 한 그 현지인의 요구사항은 자신의 칼을 사라는 것이었다.


'어, 안사요.'


잠시 놀랐던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길을 나서서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제일 큰 백화점을 찾았다. 상대적으로 빈국이었지만 그래도 돈 많은 사람은 있는지 여느 선진국가의 백화점처럼 1층은 온갖 글로벌 브랜드의 화장품과 향수가 즐비했고 호화로웠다. 대부분 한국 백화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유명 브랜드사의 제품들의 향연이어서 그랬는지 우리 일행은 금세 흥미를 잃고 호텔로 방향을 잡았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보다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이 빈번했는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나라 장마철의 소나기처럼 엄청나게 쏟아 붓는 비를 만났다. 인근의 큰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섬광이 비추더니 우뢰와 같은 천둥소리가 도시를 갈랐다.


한국의 장마철 천둥소리보다 조금 크기는 했지만 익숙한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옆에서 함께 비를 피하던 우리 또래의 현지인이 그 소리에 놀라 자지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왜 저렇게 오버를 하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큰 건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카르타에서는 매해 적지 않은 인원이 벼락에 맞아 죽는다는군...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거친 후 지사장님이 주최하는 만찬장에 도착해서 착석을 하고 오랜(?)만에 한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숯불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서빙을 하던 현지 종업원이 내 머리 스타일을 보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당연히 일면식도 없는 현지 종업원의 그런 행동이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왜 그러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는데 이내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방금 뛰쳐 나갔던 종업원의 손에 이끌려 들어오는 그의 동료를 보니 바로 현지 호식이 머리 스타일이었는데 그 종업원이 내 머리를 손가락질 하고 자기 동료를 돌아보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아마도 호식이 머리 스타일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도 그다지 환영받는 것은 아닌가 보다. 환영은 커녕 아마도 많은 놀림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졌다. 나와 같은 머리스타일의 종업원을 보자 지사장님이 선뜻 '형제 상봉이네!' 라고 하셔서 좌중이 크게 웃었는데, 아마도 말씀은 안하셨지만 내 머리스타일이 계속 신경쓰이셨던 것 같다.


그렇게 자카르타 일정 마지막날 만찬을 한식으로 거하게 먹고 호텔로 들어와서 비몽사몽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정신이 들었다.


'누구세요?'


'어, 나야. 명수...'


문을 열어보니 명수가 상기된 얼굴로 서 있었다.


'왠일이야? 무슨 일 있어?'


'응, 국진이 그 개OO 가 방으로 여자를 데리고 왔어. 그것도 두명이나.... 나 오늘 너희 방에서 자도 되겠니?'


당시 우리 동기생들은 비용을 절약하고자 2인 1실로 호텔을 이용했는데 밤문화를 즐기는 스타일인 명수가 여자를 두 명이나 데리고 그들의 방으로 왔단다.


'어디서 여자를 데려와?'


'호텔 드나들 때 로비에 앉아있던 여자들 봤지? 그 여자들 중에 두 명을 골라왔데.'


'왜에? 두 명이나 데리고 와서 뭐한다고?'


'한 명은 자기 파트너고 다른 한 명은 나를 위해서 골라왔다나 뭐라나, 개OO!!!'


'ㅎㅎㅎ 그래도 의리는 있다.. 불편하겠지만 여기서 자고 가.'


듣고 보니 어이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기 룸메이트를 챙기는 국진이의 착한(?) 마음이 느껴졌다.


한바탕 소란(?)을 겪은 후 잠을 청하려고 누웠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나, 국진이야. 혹시 명수 그 방에 있니?'


'그래. 너 여자 둘이나 데리고 왔다면서 피난 왔다고 하더라. ㅎㅎㅎ'


'이제 여자들 갔다고 방으로 오라고 전해줘.'


'그래, 알았어.'


자카르타의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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