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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배짱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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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호 Sep 23. 2023

배짱

10. 정글속으로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만난 동료와는 친구맺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들 한다.


그런데 회사가 의도한 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기들은 길게는 9개월 짧게는 5개월의 합숙 포함한 집체교육을 받으며 동고동락하다 보니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보다도 훨씬 더 친밀감이 느껴졌고 이놈, 저놈의 호칭은 예사로울 정도로 친해졌다.


꿈만 같았던 해외패기훈련에서 돌아온 직후 각팀에서 준비한 결과물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그 뒤를 이어 희망 부서를 적어내는 시간이 되었다. 인사팀에서는 신입사원을 필요로 하는 여러 부서의 명단이 적힌 서류를 주교육장으로 활용되던 회사 강당의 교단에 가져다 둘 것이고 각자 희망하는 부서에 이름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안내를 하였다. 안내가 끝나고 서류를 교단에 올려놓자마자 내가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가 전개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종합상사에서 이쑤시개를 수출하던, 미사일을 수출하던 무역 업무 자체의 프로세스는 대동소이하고 나중에 개인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무역 전반에 대한 지식만 겸비하면 아이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서를 선택하는 것 역시 관리부서가 아닌 무역 업무를 배울수 있는 부서이기만 하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생각했고 더군다나 이미 형제처럼 친해진 동기생들이었기 때문에 희망부서를 적어 내는 것도 동기들이 서로 양보하며 느긋하게 순서대로 나가서 희망 부서를 적어 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전체 63명의 동기생 중 2 ~ 3명을 뺀 나머지는 나와는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인사팀에서 서류를 테이블에 놓기가 무섭게 대다수의 동기생들이 마치 선착순 경쟁을 하듯이 교단으로 튀어나갔고 좌석에 남아 있던 나와 2 ~ 3명의 동기들은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적응이 되질 않아 한동안 멍하니 소란스러운 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의 북새통이 지나간 후 교단이 황량해졌을 때 나와 나머지 동기들이 어슬렁 기어나가 명단을 살펴보았고 내가 원했던 무역 업무를 배울수 있는 부서 중 유일하게 선택되지 않은 부서가 눈에 들어왔는데 팀 이름이 선유팀이었다. 어차피 아이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는 신념(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개인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템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때문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내 이름을 적었다.


양날의 칼인가? 초중고, 대학 친구들보다도 훨씬 친근감이 생긴 진짜 친구같다는 생각을 했고 결정적인 사안이 아니라면 흔쾌이 양보를 해도 좋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 내가 순진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인지, 아니면 그만큼 친해지긴 했어도 모두들 이미 머리가 굵어진 상황이고 어쩔수 없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정글로 들어서는 입장들이어서 감상주의적인 우정따위 보다는 자신의 생존에 방점을 찍을 수 밖에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아노미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복잡하고 씁쓸한 마음을 담고 퇴근 길에 지금의 아내와 만났다.


'오늘 팀 결정하는 날이라고 그랬지?'


'응. 선유팀으로 정했어.'


'선유팀? 무슨 분서갱유 동생도 아니고 팀 이름이 선유팀이야? ㅎㅎㅎ 어떤 업무를 하는 곳이래?'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에너지 관련된 사업을 하는 곳이라네. ㅎㅎㅎ'


'아이템도 모르고 팀을 정해도 되나?'


'응. 어차피 무역 프로세스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무역 업무만 배울 수 있으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아.'


세월이 지난 후에 돌이켜 보면 강당에서 선착순하듯 튕겨나갔던,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던 동기생들이 나보다는 훨씬 더 정글에 적응하기 위한 전투력이 충만하였고 진지했었고 성숙했던 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들은 신입사원 연수기간 내내 혈연은 물론 학연, 지연을 총동원하여 사내 사정을 파악하는 한편 각 부서의 장단점, 발전 가능성 등에 대해 조사한 후 자신에게 제일 유리한 부서를 선택했으리라...  


이렇게 내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이 된 신입사원 연수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다음주부터는 선유팀에 합류해서 본격적으로 생존의 정글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


'그래, 가 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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