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나의 첫 세상

by 빛한결

마냥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연과 친구처럼 지내던 나의 어린 시절,

국민학교 입학과 함께 전혀 다른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국민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쯤 걸렸다.

아침이면 세 살 많은, 언니 같은 친구가 앞장서고,

그 뒤로 예닐곱 아이들이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나섰다.


엄마는 시골에 살면서도 언제나 나를 단정히 챙겨 학교에 보내주셨다.

분홍빛 블라우스에 작은 리본이 달린 옷, 가지런히 빗겨 내려진 머리카락,

엄마의 손길이 묻은 그 모습 덕분에 나는 늘 깨끗하고 예쁜 아이로 보였다.


그 덕에 잊지 못할 순간도 있었다. 학교에서 홍보 촬영이 있던 날,

나는 단정한 모습 덕분에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받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기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잠시나마 특별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엄마께 전했을 때 엄마는 무척이나 행복해하셨다.

그날의 엄마 미소는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다.


학교 길은 늘 힘들었지만,

가끔은 오빠가 자전거 뒤에 나를 태워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은 부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고,

든든한 오빠 덕분에 나는 은근히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다.

하굣길엔 개울가에 들러 물장구를 치거나 소꿉놀이에 빠져

해가 기울 때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마을 바로 아랫동네엔 군부대가 있었는데,

친구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자주 그 집에 놀러 갔다.

군인 아저씨들은 어린 나를 귀엽다며 건빵을 주기도 했다.

훈련 중인 멋진 군인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나도 당당한 여군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또래보다 키가 유독 컸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농구부에 발탁되었고,

처음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괜스레 어깨가 으쓱했다.

하지만 곧이어 찾아온 것은 혹독한 훈련과 끝없는 연습이었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벅찼고, 결국 부모님께 그만두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농구부 생활은 끝이 났고,

국민학교 농구부 시절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막을 내렸다.

가끔 생각한다.

끝까지 버티고 해냈더라면 내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힘을 길렀을 텐데,

왜 그렇게 쉽게 내려놓았을까.

지금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그 어린 날의 후회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무겁게 남아 있다.


하굣길에 경찰 아저씨들을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잘못한 것 없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 경찰이라는 존재는 이유 모를 두려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단지 권위적인 제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상상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건 그때의 나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먼저 겁부터 먹고 쪼그라들던 아이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 시절을 돌아보면,

한쪽에는 엄마의 보살핌 덕분에 맨 앞자리에 앉아 당당히 웃고 있는 내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농구부를 쉽게 포기한 아쉬움과

경찰 앞에서 괜히 움츠러들던 여린 내가 함께 있었다.

그 상반된 얼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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