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이 지나면 따스한 기운과 함께 봄이 찾아온다.
3월이 되었어도 산골짜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는지
하얀 눈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겨울의 흔적을 보여준다.
파릇파릇 새싹들이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들판에는 냉이와 달래,
그리고 씀바귀가 봄소식을 알리듯 여기저기 돋아난다.
엄마는 냉이로 된장국을 끓이고,
달래와 씀바귀로 무침을 만들어 밥상에 올리신다.
그 덕분에 우리 밥상에는 언제나 봄 향기로 가득했다.
겨우내 움츠렸던 자연이 기지개를 켜고,
눈이 녹아 굳었던 땅이 풀리면
어르신들은 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며 한 해 농사를 준비하신다.
잘 다져진 밭에 고랑을 내고,
그곳에 씨감자를 하나씩 넣고 흙으로 덮는다.
그렇게 심은 감자는 줄기를 올리고 잎을 내며,
꽃을 피워 마침내 온 밭을 푸른 잎과 하얀 꽃으로 가득 물들인다.
삭막했던 들판은 서서히 푸른빛으로 물들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산골 계곡으로 내려와
힘찬 울음소리로 봄이 왔음을 알린다.
이윽고 알을 낳으면, 그 속에서 작은 올챙이들이 태어난다.
주변은 온통 푸른 들판으로
생기를 더해가도 엄마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다
많은 농사와 집안일을 하시느라 고단함이 몸에 배어있었고,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이 부끄러워서
막내 외삼촌 결혼식에도 못 가셨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엄마의 얼굴이 환해지던 순간이 있다.
예전에는 화장품을 대부분 방문판매로 샀다.
지금은 옛 기억 속에만 남아있지만,
그 시절엔 매달 엄마를 찾아오는 친구분이 계셨다.
나는 그분을 '아모레 아줌마'라 불렀다.
아줌마에게서 은은하게 풍기던 분 냄새는
어린 내게 참으로 향기롭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농사일에 지쳐 있던 엄마도 그분이 오시면 얼굴이 환해지셨다.
엄마에게는 그것이 세상과 이어지는 유일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두 분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좋아서 나도 덩달아 웃곤 했다.
엄마는 일을 하실 때마다 늘 집 마루에 음악을 틀어놓으셨다.
나는 그 곁에서 엄마가 틀어놓은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곤 했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음악에 익숙해졌고,
예전에 엄마가 즐겨 들으시던 노래는 지금도 따라 부를 만큼 친근하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봄이 오면
마루에서 환하게 웃던 엄마의 웃음소리가 떠오르고,
그때 흘러나오던 노래가 내 귓가를 맴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봄날의 순간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문득, 그 웃음 속에서 지금의 나를 발견하곤 한다.
엄마와의 기억을 품은 채,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오늘도 한 걸음씩 이어가려 한다.